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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계(조직)는 무인(태권도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태권도인의 힘(자긍심)은 ‘명예’에서 나오고 태권도인 삶은 ‘명분(정의)’ 실천에 있다
태권도인은 태권도 수련에서 터득한(체화된) 무인(도)정신을 실천하고, 그 행동을 바탕으로 한 명예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무인이 추구하는 무인정신은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中庸의 道’를 실천하는 것이고, ‘명예’는 무도인의 권위(가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인의 명예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대의명분’을 위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무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사회, 조직)에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고, 비굴하게 아부하며 정의롭지 못한 일에 일조(동조)하기보다는 자신 있게 자신을 드러내 옳고 그름을 주장하며 잘못을 바로잡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예’를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런 무인의 행동철학을 소중히 여겨 현 시대에도 옛 무인들을 귀감(龜鑑)으로 받들고 무도로서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인 사상과 정신은 남(상대)을 배려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며, 사회를 위해 희생(기여) 할 수 있는 정신을 이끄는 행동철학입니다
우리나라의 옛 ‘武人’ 정신은 ‘文人’들의 업신여김으로 사라졌지만 일본에는 잘 보전되어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져 강대국 반열에 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일본 문화에서 무인의 근원인 ‘사무라이 정신’은 혼란한 시기에 700년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무라이’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정확히 모르며 추측과 말로만 전해져 내려올 뿐입니다. 사무라이란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섬김의 자”로 권력자의 호위무사를 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도덕과 윤리보다는 주군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하며 그 행위에서 ‘명예’를 찾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에서 기원(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백제의 몰락(475년)으로 백제와 관련한 역사 자료가 많지 않지만 백제에는 무사(인)로 불리는 ‘싸울아비’라는 무사 계(급)층이 있었습니다. 삼국 중 일본과 교류가 제일 많았던 백제의 ‘싸울아비’가 일본의 ‘사무라이’의 어원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도 전라도에서는 ‘싸울아비’란 ‘싸울->싸움’ ‘아비->어른’, 그래서 싸우는 어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무인 정신을 존중하며 따르는(행하는) 무인들이 있고, 그들의 숨은 활약(희생정신)이 國難(국난)에서 나라를 지키는 큰 힘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국난이 끝나면 희생은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 끝에 남는 것은 배고 품과 武人들을 폄하하고 비웃는 약사 빠른 자(文人)들의 배부름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가 무인의 희생으로 유지되었고 문인들의 탁상공론에 의해 쇠락(농락)해 왔다는 것은 역사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태권도계도 같습니다. 태권도 수련가치의 최고 무력(단) 소유자인 일부 몰지각한 9단들과 태권도계 제도권에서 기생해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며 태권도계에 이름 석자올린 영혼 없는 좀비 태권도인의 현실(처신)이 똑 같습니다.
이런 역사(武와 文) 속에서 근근이 맥을 유지하는 우리의 무도 수련(교육)은 시대적 사명감을 갖는 ‘양반(무인)’ 지도층(사회인)을 만들기 위한 수련(교육)인가? 라는 물음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물음은 태권도 수련이 무도로서, 현재 일선에서 수련되는 내용과 추구하는 정신이 무인(도) 정신에 부합 하는가?를 되돌아 볼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단순히 대비해보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태권도가 추구하는 수련가치를 다시 정립해야 할 명분(가치)이 있습니다. 무도 수련은 사람으로서 文(문)과 武(무)를 겸비하라는 의미를 담고(정의) 있습니다. 이 말은 사회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사람의 자질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무(武)을 익힌 자(사람)는 노동자로 쓸 수 있어도, 문(文)만을 익힌 자는 사회적 혼란만을 일으키는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고대사(과거사)에서 여실히 증명된 지배계층의 민낯으로 그런 사례는 역사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태권도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인 정신을 함양(가르치는)하는 태권도장들이 많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 우리사회에서는 무인 사상을 함양해야 할 도장들은 입시위주의 학업에 의해 청소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태권도 수련 가치를 우리 스스로 폄훼해 일반인들로부터 배척당해 문을 닫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그 와중에 명맥을 이어가는 도장들은 사회와 타협하여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 돌봄 교실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나름 성업하는 태권도장들이 있으나 앞에서 언급한 무인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서로가 상생하는 배려, 희생, 정의, 명예, 권위 등 무인(무도) 정신을 함양하는 도장은 찾기가 힘듭니다. 각종 행사(기념식)에서 무인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여 무인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사상(행동철학)을 수련(전수)받을 곳은 없습니다.
무도(인) 정신을 비웃고 방관하는 태권도계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작금 태권도계는 옛 고구려 시대의 문무를 겸비한 양반가의 무인 정신을 부활해야 합니다. 특히 국기원, KTA, 시도협회에서는 더욱 ...
‘兩班(양반)’이라 함은 고려(高麗), 조선(朝鮮) 시대에, 지배층을 이루던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을 이루는 말로 이들은 ‘文’과 ‘武’를 겸비한 진정한 무인입니다. 현재 태권도계(국기원, KTA, 시도협회)는 文武를 겸비한 진정한 태권도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025. 11. 24 태권도포럼 /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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