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청소년기 태권도 수련 이력(자서전) ’

 

필자의 태권도 수련 이력과 스승(?)이 누구며, 계열관이 어디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난 한결같이 동생들이 내 스승이라고 하고 나 스스로 태권도를 터득(?수련)했고, 계열관에 속해 있지 않다고 답을 합니다. 그런 대답에 족보도 없는 태권도를 수련을 했다고 화(?비아냥)를 내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다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필자는 분명히 합니다. 나름 독자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했고(터득) 나만의 태권도(무도태권도)를 갖고 있다고(완성) 자신 있게 말합니다. 지금 공개하는 내용은 논픽션(nonfiction)이 아니라 필자가 실제로 청소년기에 수련한(정진한) 태권도 수련 이력(자서전)의 일부입니다.

 

필자의 태권도 수련은 1970년도에 서울 광진구 자양3동에 있는 자양초등학교 태권도부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본인의 형제는 4남매의 전형적인 가족구성이었는데 셋째, 넷째 남동생들(초2, 3학년)이 학교 태권도부에서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들을 마중하러 학교에 가는 과정에서 창문 너머로 태권도 수련하는 것을 보게되고 자연스럽게 창문 너머로 동작을 따라 하게 됨과 동시에 동생들 수련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동생들에게 동작을 하나씩 전수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날 때 마다 동생들이 수련하는 학교를 찾았고 그런 시간이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복도에서 혼자 동작 흉내를 내고 있는 나를 동생들을 지도하던 사범님(이진묵 사범, 아주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감)이 부르더니 동작을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어깨 너머로 배운 태권도 동작 시연을 처음으로 했는데 사범님께서 태권도 수련정도가 상당히 깊다고 칭찬하고 동생들을 포함한 초등학생 수련생 80여명의 통제를 간간히 맡겨 주었습니다. 즉 교사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사범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관장님, 사범님 그리고 바로 그 밑에 태권도 수련을 봐주는 교사란 지도사범이 있었습니다.

 

1단(초단) 승단은 1971년 청도관 본관에서 1단을 획득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승단 연한이 경과 되어야 승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인정되면 본관심사를 거쳐서 단을 부여했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에 2단에 승단했고, 3단은 정도관으로 관을 옮겨서 승단을 했습니다. 관을 옴긴 이유는 이진묵 사범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관계로 자양3동 학교 근처에 있던 태권도장을 찾았는데, 그 태권도장이 정도관 소속으로 지금의 건국대 후문에 있던 정도관 제8관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도관으로 관이 바뀌었습니다.

 

4단은 특전사(5여단)에서 획득하고 사범자격은 1981년 제대를 하고 청호체육관을 개관하면서 취득을 하고 그 이후로 국기원 승단규정에 의해 5, 6, 7, 8, 9단을 승단하여 현재 9단의 무력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태권도장을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가 수련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실제로 동네 도장의 수련생들은 그 지역에서 건달끼(깡패)가 있는 18세 이상의 청소년을 비롯 20대의 성인 수련생이 대부분이었고 또 철저하게 교사 또는 선배 수련생들에 의해서 신규 수련생들의 수련이 전수(통제)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태권도를 수련한다는 것은 ‘동네에서 깡패(?)를 만들려고 태권도를 시키냐고’ 동네 어른들이 눈총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아버님은 3남매를 태권도에 입문(수련) 시켰습니다.

 

새롭게 입관한 동네 태권도장에서 처음으로 독자적(혼자)으로 터득(수련)한 태권도 동작이 아니라 정상적 수련과정을 접하게 되는데 필자보다 나이가 많은 수련생과 수련(대련)을 하게 되었는데 일종의 도장의 텃세란 것이 있던 시기로 특히 처음 태권도를 입문하는 수련생이 아닌 타 관 수련생들은 실력에 상관없이 일단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던 시절입니다.

 

필자 역시 그런 과정(관행)에 입각해 수련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련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수련생과 겨루기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막 1단에 승단한 수련생이었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주먹지르기로 KO을 시켰고, 그러자 교사라는 지도 사범이 직접 본인과 겨루기를 했고 그 교사도 들어찍기 한방에 KO가 되는 상황이 많은 수련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벌어진 입관식(?)이 었습니다.

 

그 일로 해서 도장내 태권도 수련은 수월하기는 했는데 문제가 다른 곳에서 생겼습니다. 처음에 KO를 당한 수련생이 바로 도장이 있는 자양3동에 사는 수련생인지라 어떻게 해서든지 앙갚음을 하려고 벼르는 것이었습니다. 도장에서는 실력으로 대결이 되지 않으니까 수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공동묘지에서 항상 동네 친구들과 패거리를 이루어 앙갚음을 하려고 했습니다.

 

교사 또한 도장의 선배로서 드러내놓고는 못했지만 항상 본인에게 겨루기 과정에서의 수모를 되돌려 주려고 벼르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수련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동네 태권도장에서 고등학교(영동) 태권도부(특별활동)로 옮겨서 운동(수련)을 계속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바로 1년 선배들이 자기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니까 단체로 괴롭힘을 주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학교 생활부(규율부)와 연계된 선배들과 맞서는 교내 패싸움(세력)에 휘말리게 됩니다. 선배 한명을 반 불구로 만드는 사건을 치게 되고 그로 인해 학교가 발칵 뒤집히는 일에 연류돼 징계를 받을 뻔했으나 담임선생님의 중재로 없었던 일로 서로 부모들 간에 합의가 되어 학교를 무사히 마칩니다.

 

그러는 와중에 고3 졸업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졸업생으로서 특별활동(태권도)부를 방과 후에 지도(후배들 수련지도)하게 됩니다. 당시 월 수련비로 1인당 3,000원의 수련비(차비)를 받았습니다.

 

당시 후배 수련생들은 70여명으로 받은 수련비는 모두 본인(필자)이 지도(수련비)비로 챙겼는데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상당히 큰 금액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힘 있는 자가 어떻게 해서든 차지(뺏는)하는 게 경제 논리로 수련비로 받은 돈을 체육주임 교사가 자신에게 넘길 것을 요구해 그만두고(1년8개월) 바로 특전사에 지원 입대를 합니다.

 

특전사 지원 입대는 미국에 이민 간 이정섭이란 친구의 꼬드김(?권유)에 의해서 하게 되는데 이정섭이란 친구와는 고등학교 시절에 규율부(생활부)에서 우두머리 역활을 하는 관계로 서로 라이벌 관계였으나 교내 규율부와 충돌(교내세력싸움)후 가까워지기 시작해서 군대도 같이 가고 제대 후에도 상당기간 돈독히 지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관계로 만나지 못하는 친구입니다.

 

정섭이란 친구와의 관계에서 태권도를 지금까지 계속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졸업 직전에 여학생들과 둘씩 짝이 되어 여주 신륵사로 야영을 갔고 그 야영에 같이했던 한 여학생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데 그 여학생과 친구 사이가 되는 계기도 역시 태권도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와 여학생들과 짝이 되어 여주시내에 도착하여 가계에서 맥주와 간식거리를 사고 야영지인 강변 모레사장 쪽으로 걸어서 이동을 하는데 당시 관광지에서는 으레 청소년들의 텃세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강촌, 대성리등 대학생들이 미팅을 가는 장소로 놀러온 팀과 그곳의 마을 토박이 청년들 간의 이유 없는 대립으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후에 안 일이지만 건달 근원지 중에 하나가 여주시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주에서의 사건은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동네 청년들과의 문제로 시작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끈질기게 치근덕거리고 특히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더는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되어서인지 아님 우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인지 여주시내에서 그냥 돌려차기를 한 청년한테 한방 날렸습니다. 그것도 바로 파출소 앞에서...

 

그 당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도 지금처럼 폭력전과로 바로 잡혀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거의가 훈방조치를 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청년들의 일상생활을 시국이란 상황 때문에 통제를 과도하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봐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문제가 일단락되는가 했는데 밤에 모레사장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데 12시가 넘어서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일행 4명은 둘씩 짝을 지어 얼큰하게 맥주도 한잔하고 그 당시 유행하던 모닥불을 피워놓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설치해 놓은 텐트가 송두리째 모레사장 위로 미끄러지듯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낯에 한방 얻어맞은 동네 건달과 친구들 서너 명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는 해코지(시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필자는 술이 세었던 것 같습니다. 이정섭이란 친구는 원래 술을 많이 못했고 여학생들도 여학생인지라 맥주 서너 잔에 이미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고 본인 혼자서 대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남자들답게 너희들 중의 대표와 내가 1:1 결투를 해서 너희가 지면 조용히 우리들이 놀다가 갈수 있도록 이 시간 이후에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고 내가 지면 우리가 가지고온 모든 야영도구와 맥주 1박스를 주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제안을 받아드려 한밤중에 영화에 나올법한 여주강변 모레사장에서 말죽거리 잔혹사(결투)가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동네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싸움을 해 봤다고 했으나 나 역시 태권도를 상당히 심도있게 하던 때고 펄펄 날라 다니던 시절로 당시 내 별칭이 이소룡을 빗댄 신소룡이었습니다. 또 한 굵직한 싸움을 주기적으로 해봐서 실전에 상당히 강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는 관광지뿐만이 나니라 일상적을 거주하는 동네(마을)에서도 이웃 마을을 가려면 으레 동네 청소년들과 마찰을 빚는 상황 이었습니다. 특히 필자가 거주하던 전말이란 동네는 지금의 성수동 공장지대, 자양3동, 화양리, 천호동(광나루, 워커힐)등 동네(지역) 텃세가 수시로 충돌하는 곳이었던 관계로 본의 아니게 동네 텃세 출동에 수시로 휘말리는 상황 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잽이 안 되는 상황으로 결투(?)가 끝이 났고 그 인연으로 그들과 밤새 꼭지가 돌도록 소주를 먹었는데 그 상황에서 내 짝이었던 여학생이 나에게 반해서 즉석에서 친구(연인) 선서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야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18살 혈기 왕성한 청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문제는 그 여학생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공부를 집안에서 철저히 시키는 상황이었고 나 역시 어머니가 공부이외에는 허락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 하는 고통을 처음으로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학생은 대학교를 가고 난 반발심만을 키워 결국은 대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졸업과 동시에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1년여 동안 나를 지탱해준 것이 태권도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지 않고 히피족처럼 생활을 하면서도 유독 마을 뒷산에 메어놓은 빽을 차면 모든 것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여주에서 태권도로 인해서 여학생과의 연인(?)의 관계가 맺어진 것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 때문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필자가 얻은(터득)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태권도를 하므로 옳고 그름 즉 ‘정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의’란 단어가 갖는 보편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모든 생활에서 ‘정의’ ‘옮고 그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필자는  이 생각에 충실하게, 태권도를 수련하는(평생) 입장에서 자랑(자긍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자를 돕는 것과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참지 못하고 나서는 것이 필자 성격인데 이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태권도 수련을 통해서 내 몸에 배어있는 신념으로 “옳지 않는 일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권도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다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庸의 道’'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철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고귀한 武道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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