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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과 오키나와 '테(手)' "잃어버린 우리 무예의 발자취"
태권도 역사의 진실은 "전설을 넘어 실체적 역사로" '태권도의 모체는 가라테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전통 무예' 개념을 정립해야 합니다.
'홍길동의 율도국(유구국) 건설과 오키나와 전래설'을 바탕으로, 태권도의 역사가 단순히 일제강점기 이후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무예의 일본 전파와 귀환'이라는 거대한 순환의 역사임을 역설합니다.
16세기 홍길동 세력의 오키나와 진출을 통해 우리 무예(수벽치기)가 전파되었고 이것이 가라테의 뿌리가 되어 일본 고유의 무술로 발전했고 그 가라테가 태권도란 신생무술로 되돌아 왔다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역사적 선행성에 바탕 한 주장입니다. 중국 무술보다 앞선 조선 무예의 전파입니다. 오키나와(류쿠왕국)의 무술사를 살펴보면, 흔히 언급되는 중국 사신(공상군)에 의한 '당수(唐手)' 전래(1756년)보다 훨씬 앞선 1500년대 초반, 이미 조선의 홍길동 세력이 오키나와 제도에 정착했다는 구체적인 기록과 정황이 존재합니다.
1500년 12월, 홍길동 집단이 하떼루마지마(파조간도)에 정착하고 1501~1508년에 석원도, 궁고도, 구메지마 등을 장악하며 조선 양식의 성(城)을 구축하고 해상권을 장악 했다는 일본 사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위 사실은 중국의 진원빈이나 공상군이 오키나와에 무술을 전하기 이전 최소 100~200년 전에 이미 조선의 병법과 무예(수벽치기)가 오키나와 토착 무술인 '테(手)'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키나와 테(手)란 명칭에 궁금증이 있습니다. 왜 '테(手)'라고 불렀는가? 입니다. 오키나와인 들은 왜 무술을 '테(手)'라고 불렀을까요? 이는 조선의 수박(手搏)에서 '박'자를 생략한 형태이거나, 일본의 금무(禁武) 정책 아래에서 무술 수련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은어였을 것입니다.
결국 가라테의 모태인 '오키나와 테'의 원형은 우리 민족의 수박치기였다는 것이 필자의 핵심 가설(주장)입니다. 태권도가 해방과 더불어 가라테를 모체로 근대무술 태권도로 탄생한 것은 ‘단절과 귀환’으로 가라테의 모방이 아닌 '민족 DNA의 회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36년의 단절 기간은 우리 전통 무예의 맥을 끊어놓았습니다. 해방 후 가라테를 수련한 기간도장(基幹道場) 창시자들이 도장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순한 외래 무술의 유입이 아닙니다.
동작의 변이를 통한 우리 무예의 귀환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라테를 바탕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 특유의 '발을 잘 쓰는 기질'이 발현되어 태권도만의 독창적인 발차기 위주 무술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는 역설적 정통성의 회복입니다. 우리 무예가 일본으로 건너가 가라테가 되었고, 그것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태권도가 되었다는 '파라독스(Paradox)적 역설'이야말로 태권도 역사의 진실 된 뿌리입니다.
"모방도 창조입니다." 가라테를 모체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5000년 역사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보다, "우리 민족의 DNA가 담긴 무예가 타국을 거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세계화되었다"는 태권도 역사 주장(논리)이 태권도의 위상을 더욱 당당하게 만듭니다.
다음 3부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가설을 바탕으로 "태권도가 나아가야 할 정체성 확립의 방향과 가라테를 넘어 민족 무예로 회귀하다"에 대해 각론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무도태권도 / 태권도 9단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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