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반세기

 

각론 되는 바와 같은 엄연한 사실 때문에 견강부회(牽強附會)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태권도 역사가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태권도를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무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통신(IT) 사회인 현시점에서는 허구입니다.

 

발전(세계화)이란 명분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모방도 창조입니다. 가라테를 모체로 근대 무술로 시작된 태권도가 스포츠라는 성격으로 세계화된 것 그 자체로 태권도는 우리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화된 태권도가 태권도 본연의 모습인 무도(태권도)로서 새롭게 태어나 무도태권도로 다시 세계화된 태권도(무도)의 참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태권도 반세기','태권도 現代史','노병직 관장의 친필 서한'을 참고로 해방과 더불어 태동 돼 현재에 이른 태권도의 근대사를 재구성(편집)해 각론 합니다.

 

태권도 태동과 분열

과목한 무도인 - 홍종수

 

자존심 높은(?) 무덕관의 산증인 홍종수 관장은 서울태생(1930년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호랑이 같다고 주변에서는 비유했습니다.

 

하지만 건장(健壯)한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은 엄청 여려서 주변의 어려운 후배, 제자들을 돕는데 늘 앞장섰던 태권도인이라고 태권도계에 회자(평가)합니다.

 

홍종수 관장은 철도국에 근무했던 터라 처음부터 황기 관장에게 무도(술)를 배웠고 유일하게 무덕관의 적통을 이어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종수 관장은 운수부의 일반 직원이 아니라 철도경찰로 근무했습니다.

 

지리산에서 빨치산 토벌전이 벌어졌을 때는 경사 계급으로 분대장을 맡았다고 하는데 그 경력(전력)으로 전쟁이 끝난 후 대구 경찰서에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했고 그때 대구에서 무덕관을 개관했고 점차 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으로 무덕관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홍종수 관장은 1960년대 초반 스승 황기 관장의 부름으로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경찰 생활을 접고 수박도회 서울 본관에서 사범으로 활동합니다. 그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황기 관장은 1964년 불광동에 도장을 개설해 홍종수 관장에게 맡깁니다.

 

동료들이나 후배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었던 홍종수 관장은 황기 관장이 통합선언 번복으로 제자(고단자)들에 의해 무덕관에서 축출된 후 무덕관 총본관 장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협회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홍종수는 협회 전무이사, 부회장 등 여러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무덕관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김영택 등 무덕관 고단자들에 의해 황기 관장이 협회 통합선언 과정에서 통합 합의를 번복하는 무효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황기 관장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퇴출에 동조(?)한 것이 되었고 그에 대해 생전에 황기 관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황기 관장은 끝내 홍종수 관장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태권도계에서 한문학에 능통한 학자(學者)로 정평이 나 있는 유일한 태권도인입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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