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반세기

 

각론 되는 바와 같은 엄연한 사실 때문에 견강부회(牽強附會)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태권도  역사가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태권도를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무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통신(IT) 사회인 현 시점에서는 허구입니다

 

발전(세계화)이란 명분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려 왔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모방도 창조입니다. 가라테를 모체로 근대 무술로 시작된 태권도가 스포츠라는 성격으로 세계화된 것 그 자체로 태권도는 우리의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화된 태권도가 태권도 본연의 모습인 무도(태권도)로서 새롭게 태어나 무도태권도로 다시 세계화된 태권도(무도)의 진면목을 보여야 합니다.

 

 

총 68회에 걸쳐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태권도 반세기','태권도 現代史', '노병직 관장의 친필 서한'을 참고로 해방과 더불어 태동돼 현재에 이른 태권도의 근대사를 재구성(편집)해 각론 합니다.

 

태권도 태동과 분열

 

대한태수도협회 집행부 구성

 

태수도협회 부회장 이종우, 엄운규는 태수도 협회의 위상정립과 대내외 활동을 위한 힘(영향력) 있고 덕망 있는 회장을 영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협회구성 후 상당기간(이듬해 12월 초까지) 회장자리를 공석으로 비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수도협회 창설 과정에서 2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으나 아직 30대 중반으로 사회적인 힘(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최홍희 장군이 가장 유력한 회장후보가 될 수 있었으나 민간 태권도계에서 배척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받드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라이벌 의식(?)과 군인 출신으로 너무 튀는지라 질투와 시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태권도계에서 영향력은 컸으나 태권도인들로 부터는 경원시 되고 있었으며 특히 제대를 하고 조만간 말레이시아 대사로 갈 예정이어서 자연스럽게 제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자리를 대신할 유력한 회장 후보로 채명신 장군이 자연스럽게 태권도계에 부각이 됩니다.

 

채명신을 추천한 것은 군과 유대관계가 깊었던 엄운규였습니다.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감찰위원장으로 권력이 있었던 데다 덕망 또한 높았던 채명신이야 말로 태권도협회 초대회장으로는 적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종우와 엄운규는 당시 협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서울시장 보좌관으로 복무 중이던 백준기를 통해서 물밑 작업(회장영입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준기는 육군 대위였고 채명신은 육군 준장이었습니다.

 

위계질서(계급과 명령)에 따라 돌아가는 군(軍) 사회에서 대위가 준장을 찾아가 일을 부탁하고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준기는 1950년대 중반 최홍희가 오도관을 창설해 전 육군에 태권도를 보급할 때 중앙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채명신과 두터운 관계를 쌓아 5.16 정국에서도 감찰위원장실을 절차 없이 출입해 독대를 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백준기는 당시 채명신 감찰위원장을 회장으로 추대하는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대한태수도협회가 어렵게 구성됐지만 당시 협회 임원들은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없는 30대 초중반의 인사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협회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마땅한 인사를 찾던 차에 채명신 장군을 회장으로 추대하게 된 겁니다.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은 국가재건최고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주일 준장이 맡는 등 사회 분위기상 태권도계는 군세(軍勢)를 업은 인사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감찰위원장의 위세는 서슬퍼런 군사정권하에서 대단한 것이었지요.

 

백준기는 이종우, 엄운규의 부탁을 받고, 곧장 감찰위원장실로 찾아가 채명신 장군을 독대해 태권도계 전후사정을 얘기하면서 회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자 채명신 장군은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채명신 장군의 회장 수락사실을 나는 재빨리 부회장에게 알렸고, 협회에서 공표를 해 일사불란하게 채명신 장군을 회장으로 추대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초대회장 영입을 성사시킨 태수도협회는 1962년 12월 대한체육회의 승인을 얻어 이듬해 2월 23일 정기총회에서 축구, 야구, 수영 등에 이어 28번째로 정식 경기 가맹단체로 가맹(출발)합니다.

 

그 후 5월 1일 협회 사무실을 대한체육회 323호실로 이전한 대한태수도협회는 1963년 6월 24일 집행부를 전면 개편합니다. 회장 채명신, 부회장 현종명, 이종우, 전무이사 엄운규, 박철희, 총무이사 이병로, 경기이사 우종림, 이사 이용우, 최기용, 정진용, 이교윤, 김순배, 백준기, 이영섭, 이병건, 감사 김봉식, 이령홍, 사무장 김완수 등을 주축으로 집행부를 구성했습니다.

 

다음 24부에서는‘무덕관(황기)의 이탈’에 관해 각론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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