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반세기

 

각론되는 바와 같은 엄연한 사실 때문에 견강부회(牽強附會)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태권도 역사가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태권도를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무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통신(IT) 사회인 현 시점에서는 허구입니다.

 

 

총 40회에 걸쳐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태권도 반세기','태권도 現代史', '노병직 관장님의 친필 서한','도산체육관 김용길 관장님의 증언'을 토대(참고)로 해방과 더불어 태동돼 현재에 이른 태권도의 근대사를 재구성(편집)해 각론 합니다.

최초의 인물들

형보다 더 큰 동생 - 전일섭(지도관)

 

지도관은 전상섭 관장이 창설했지만 館(관) 세력을 번창시킨 것은 친동생 전일섭 관장입니다. 전일섭 관장은 구기 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형(전상섭)의 영향(권유)으로 무도(가라데)에 심취하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전일섭 관장과 같이 수련한 사람들은 배영기, 이종우, 김복남, 박현정, 김수진, 정진영, 이병로, 홍창진, 박영근 등이라고 합니다.

 

전일섭 관장은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전라북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도관의 단계적 발전은 전일섭 관장이 1947년 5월 군산에 내려가 지도관 지관을 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일섭 관장은 군산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체육관을 운영하다가 1955년에 전주로 생활 본거지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지도관 세력을 넓혔습니다.

 

지도관의 단계적 발전은 전북 전주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전상섭의 동생 전일섭은 조선연무관권법부의 지관을 전주에 개설해 6.25 이후 조선연무관권법부의 파생관인 지도관에 합류(소속)합니다.

 

그때부터 전일섭 관장은 전북의 3대 도시인 전주, 군산, 이리를 거점으로 김제, 남원, 정읍 등 군(郡) 소재지까지 광범위하게 세력 범위를 넓혀 나갔습니다.

 

館(지도관) 세력을 넓히는(확장)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임대를 해서 도장을 개설(개관)해야 했기 때문에 지역 유지들의 도움(재정적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일섭 관장은 태권도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지도관 세력 확장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전북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충청남도 남부(대전)까지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태권도 반세기’에 서술 된 바에 의하면 당시 수련비(관비)와 입회비는 100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1910년의 식민지 시절 1원은 현재(2020) 5000원 정도 되는데 상당히 큰 액수가 아닌가 합니다.

 

전일섭 관장은 모인 돈으로 지관을 개관하려는 후배, 제자들에게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1955년 당시에 입관자(신규입관)가 많을 때에는 1백 여명이 한꺼번에 등록하기도 했다고 ‘태권도반세기’에서는 서술되고 있습니다.

 

전일섭 관장의 노력으로 지도관이 전북을 거점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찰 계통의 뿌리를 둔 청도관 지관이 전주에 개설되었고, 뒤 이어 오도관도 지관을 개설하였다고 합니다.

 

전북의 맹주격인 지도관 아성 본거지에 타관 도장이 들어옴으로서 지역에 엄청난 갈등(세력 싸움)이 난무 했을 것 같은데 당시 전일섭 관장은 덤덤하게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환영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무도 수련은 경쟁자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소신이 서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일섭 관장의 면모(인격 됨됨이)가 보이는 대목입니다.

 

전일섭 관장은 전북태권도협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습니다. 그런 결과는 아마도 전일섭 관장의 면모가 작용한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현재 태권도계(국기원, KTA, 시도협회) 위정자들은 본 받아야 하는 태권도인 면모(됨됨이)가 아닌가 합니다.

 

지도관이 태권도 시합(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유는 1960년대 초반 태권도가 경기화 되면서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 전북 선수들은 전국체전(10년 동안)에서 7번이나 우승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고 館勢(관세) 또한 하늘 찌를 듯 높았다고 합니다.

 

전일섭 관장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이승완을 비롯해 장용준, 조정순, 우병윤, 김동성, 원병용, 박인수, 장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통해 전북 태권도계가 1960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것입니다. 전일섭 관장은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 경기화가 추진되자 경기규정과 태권도 경기용품 개발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몸통(갈비뼈)을 보호 할 수 있는 대나무 호구를 개발하는 등 태권도가 경기화로 세계를 제패하는 일등공신의 주역이 됩니다. 전일섭 관장은 지병으로 2001년 타계했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곰 같은 인물 윤병인 창무관(YMCA권법부)’에 관해 각론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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