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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권도인들은 조약돌(자갈) 깨기를 폄훼해 왔는가? — 사라진 손날 수련을 다시 생각하다 —
신성환 9단
과거 1960~70년대에는 시장이나 장터에서 이른바 ‘약장사’들이 사람을 모으기 위해 각종 차력이나 격파 시연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借力’ 시연을 두고 “눈속임이다”, “약장사의 속임수”라고 폄훼했습니다.
“차력(借力)”이라 함은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강하게 함. 또는 그렇게 얻은 힘이나 그런 사람' 이라고 정의 됩니다.
필자 역시 청소년 시절에는 태권도계(인)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왜 그리 말하는지 , 실제로 어떤 원리와 수련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조약돌 깨기를 수련하고 시연해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최근 ‘조약돌(자갈)깨기’ 쇼츠 영상을 직접 제작해 게시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래 각론 되는 내용은 격파의 한 영역으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직접 수련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견해, 이른바 필자의 ‘내피셜’입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조약돌 깨기(필자의 명명)’가 폄훼되어 온 가장 큰 이유는 직접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말하는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조약돌(자갈) 깨기를 폄훼했을까?
왜 조약돌(자갈) 깨기를 폄훼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과거적 상황을 정리하면 당시 태권도 수련은 무도라는 관점에서 시작되었으나 정작 수련체계는 무도적 관점이 아니라 경기화 된 발차기 위주의 수련에 집중되었습니다.
경기에서 상대보다 한 점을 더 얻기 위한 발차기 기술(동작)이 태권도 수련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손(수도)을 이용한 다양한 수련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태권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태권도=경기발차기’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날을 단련하고, 돌이나 벽돌 등을 깨는 수련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은 약장사의 차력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봅니다.
거기에 자신이 직접 해보지 않은 수련이나 익숙하지 않은 수련을 접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과장이나 눈속임’으로 치부하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일종의 ‘경험의 편향과 자격지심, 그리고 자신이 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봅니다. 특히 태권도인들이 아주 심합니다. ㅎ
당시 태권도인들은 경기장에서 발차기로 득점을 올리고 ‘빠샤빠샤’하며 승리를 환호하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정작 손날로 벽돌을 깨기 위한 단련과 그 원리를 연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적었다고 필자는 단언합니다.
그런 현상을 태권도인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필자가 경험한 태권도 수련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경기 중심의 발차기 수련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무도적 수련의 여러 영역이 사장된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경기 태권도와 무도적 수련 영역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태권도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태권도가 경기(스포츠)로 발전하면서 발차기와 득점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은 분명하고, 그 과정에서 태권도의 본질인 무도적 수련체계가 사장된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말하는 조약돌 깨기는 바로 그 사장된 수련 영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권도가 무도라고 한다면 단순히 ‘태권도는 무도다’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무도의 수련 영역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단련하고, 손과 발을 단련하고, 타격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신체를 통제(생리적)하는 다양한 수련 과정이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약돌 깨기 역시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손날(수도) 단련의 한 영역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와·벽돌·대리석 격파’와 ‘조약돌 깨기’는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손날 격파라고 하면 기와, 벽돌, 대리석 등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조약돌 깨기는 격파방법 자체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격파물의 ‘경도와 형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벽돌이나 기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격파에서는 강한 힘과 정확한 타격, 신체의 구조적인지지(중심)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반면 조약돌 깨기는 단순히 ‘힘으로 내리쳐서 깨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필자가 수련을 통해 터득한 방식에서는 힘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전달하고, 조약돌과 받침돌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맞추며, 타격 순간의 타이밍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조약돌 깨기는 단순한 근력(손날)의 문제가 아니라 숙달된 타격 감각과 요령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필자가 특전사 복무 시 벽돌 격파와 자갈 격파를 시연해 본 경험을 비교하면 자갈격파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대략 7:3 정도로 자갈 깨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상황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위력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벽돌이나 기와를 깨는 상황은 기합소리와 동작 자체가 크고 웅장합니다. 반면 조약돌 깨기는 동작이 상대적으로 작고 순간적입니다. 격파 직전에 심호흡을 하고 큰 기합소리와 함께 힘을 표출하는 모습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탁’ 하고 깨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샤프하고 얍삽(?)해 보입니다.
필자는 바로 이런 시각적인 차이 때문에 과거에 조약돌 깨기가 상대적으로 폄훼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현재는 아예 수련을 해 보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에 앞에서 제기한 “직접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하는 평가(폄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50년 만에 다시 해본 조약돌 깨기
필자는 20대 전성기 시절에는 성인 팔뚝 정도 크기의 자갈을 두부 썰 듯이 깨뜨렸습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거의 50년 가까이 조약돌 깨기 시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조약돌 깨기를 해보니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전의 감각이 사라졌고 손날을 받쳐주던 근육과 단련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시연 뒤에는 손에 후유증도 따랐습니다. ㅎ 금번 시연에서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조약돌 깨기 역시 단순한 힘(수련결과)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반복해서 몸으로 익힌 감각과 단련이 필요한 수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약돌 깨기의 핵심은 손날 단련과 ‘감각’
필자가 생각하는 조약돌 깨기의 기본은 먼저 손날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한 충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 강도 충격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면서 손날 부위를 단련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손의 골격을 무리하게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날 근육과 타격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벽돌에 새끼줄을 감아 저 강도의 충격을 반복적으로 주는 것으로 환경이 허락한다면 생나무를 대상으로 손날이나 장(掌)을 이용해 저 강도 단련을 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지금도 아침(새벽) 운동을 하면서 잣나무를 대상으로 장(손바닥)치기를 합니다. 다만 이런 단련은 무리하게 강도를 높이면 손과 관절에 변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상태에 맞춰 점진적으로 해야 합니다.
조약돌 깨기 수련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손의 골격 변형 없이 매끄러운 손을 유지하면서도 폭발적인 위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필자의 경우 어떤 자리에서 우수개소리로 자갈을 두부 썰듯이 썬다고 하면 먼저 손을 보자고 하며, 내민 손을 보고는 한결같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조약돌 깨기는 ‘힘’보다 ‘간격과 타이밍’
필자가 생각하는 조약돌 깨기의 핵심은 깨려는 돌과 받침돌 사이의 간격을 감각적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에 맞춰 손날의 타격력이 순간적으로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골프 스윙에 비유합니다. 골프공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세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골프채 헤드와 공이 정확한 순간, 정확한 위치(간격)에서 부딪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약돌 깨기도 같습니다. 조약돌과 받침돌의 위치(간격), 손날이 내려쳐 지는 각도, 타격 순간의 속도와 타이밍이 서로 맞아야 합니다. 따라서 조약돌 깨기는 ‘힘센 사람이 무조건 잘하는 격파’가 아닙니다.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힘을 전달하는 감각을 얼마나 숙달했느냐가 중요한 수련(관건)입니다.
조약돌 깨기는 작용·반작용을 이용한 순간적인 타격이 핵심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조약돌 깨기의 원리는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활용하는 타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반작용의 힘으로 돌을 깬다’는 것은 아닙니다.
조약돌과 받침돌 사이의 조건을 만들고, 손날의 순간적인 타격력을 그 조건에 맞춰 전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격한 뒤 손이 조약돌에 계속 머무르지 않고 순간적으로 빠져나오는(흘려지는) 것입니다.
즉 손날이 돌에 닿는 순간 힘을 전달하고 끊어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지속적으로 밀어붙이는 힘과 순간적으로 충격을 전달하는 타격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필자는 조약돌 깨기를 누군가에게 사사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강에 놀러 갔다가 라면을 끓이기 위해 코펠받침돌을 만들던 중 터득한 것이었습니다.
기울어진 부분을 받쳐줄 돌을 찾다가 납작한 돌을 부딪쳐 조각내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돌이 깨지는 원리를 느끼게 됐고, 그 후 혼자서 이리저리 반복해 보면서 지금의 조약돌 깨기 감각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필자의 조약돌 깨기는 특정 문파나 사범에게 전수받은 수련체계라기보다 스스로 반복하고 실패하면서 터득한 경험적 수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약돌 깨기의 또 다른 매력
조약돌 깨기의 가장 큰 매력은 손의 골격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손날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은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와나 벽돌, 대리석 격파는 격파 물을 준비하고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약돌 깨기는 강가나 계곡, 시냇가, 산과 들 등 돌이 있는 곳이라면 비교적 간단하게 시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약돌 깨기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입니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 조약돌 깨기를 시연하므로 여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왜 이 수련은 사라졌는가?
필자는 조약돌 깨기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를 전수의 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 가르쳐야 할 수련이었지만, 태권도가 경기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이 수련 체계(영역)가 존재하지 않았고, 관심 자체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 수련을 태권도계에서 폄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약돌 깨기는 ‘약장수들이나 하는 저급 무술’, ‘눈속임’, ‘쓸데없는 묘기’ 정도로 취급돼 외면되어 이 수련을 보유하고 전수하는 태권도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한 번 끊어진 수련은 다시 복원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속에 어떤 원리와 감각이 필요한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이라도 이 부분을 다시 연구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약돌 깨기를 손날 수련의 한 영역으로 복원해야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조약돌 깨기를 손날(수도) 수련의 한 영역으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태권도의 새로운 수련종목으로 만들거나 모든 수련생에게 조약돌 깨기를 수련 시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태권도가 무도적 수련 영역을 갖고자 한다면, 과거에 존재했지만 사라져 버린 다양한 신체 단련과 타격 수련체계를 복원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약돌 깨기는 충분히 의미 있는 수련 영역입니다.
특히 성인 수련에 있어서 단순히 경기를 위한 발차기만 반복하는 것과는 다른 흥미와 수련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선 태권도장에서 단계별 수련체계를 완성한다면 성인 수련을 활성화하고 태권도 수련의 다양화에 기여 할 수 있습니다.
2026. 08. 12
무도태권도 / 신성환 9단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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