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영상 보기는 아래 유투브 영상 보기를 클릭하세요

 

行軍篇(행군편) 38강 “산전수전”

신성환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37강 “융통성이 경쟁력이다”에 이어 38강 “산전수전”에 대해 각론 합니다.

 

손자병법 각론이 서른여덟 번째 각론입니다. 오늘 또 다른 편으로 들어갑니다. 손자병법이 총 13편이라고 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각론이 아홉 번째 편입니다. 아홉 번째 편 제목이 행군입니다. 행군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행군이라 함은 군대가 이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사들이 어떤 지역으로 이동하는 그 행군이 아닙니다. ‘행’이라고 하는 것이 ‘가다’라는 뜻도 있지만 어떤 것을 ‘운용’하는 것도 행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군대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것도 행군입니다. 당연히 병사가 이동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작전을 세워서 어떤 지형에서 어떤 전술로 적과 어떻게 대치하고 하는 이런 전반적인 전투의 모든 과정을 행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行’이라고 하는 것은 간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어떤 것을 운행한다는 의미로 군대라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 할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입니다. 행군 편에서 제일먼저 접하는 말이 ‘산전수전’입니다.

 

산전수전! 여러분들 산전수전 다 겪으셨죠? 산에서 전투하고, 물에서 전투하고 하는 그 산전수전이란 말과 상통하는 것이 ‘행군편’에서 각론 하는 내용입니다.

 

왜냐면 산과 물에서 하는 전투 외에 ‘택전’도 있습니다. 산전수전이란 말은 앞으로는 산전, 수전, 택전, 육전이라고 해야 합니다. 산전수전이란 의미를 포괄하려면 택전, 육전을 포함해야 합니다.

 

육전이라 함은 평평한 육지에서 하는 전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하지 말고 택전, 육전 다 겪었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산에서, 물에서, 연못, 늪지대, 평평한 육지에서 어떻게 행군 즉 군대를 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토파해 보겠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아니 산전, 수전, 택전, 육전 다 겪었습니다. 손자병법 13편중 아홉 편까지 각론을 하면서 택전, 육전까지 다 겪었습니다. 여러분도 겪으셨죠? 오늘 각론은 그러면 도대체 산전수전이 무엇일까?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상황이 단순히 그냥 전투를 했다. 그래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냥 복잡한 인생을 살았다고 산전수전을 다 격은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 속에서 내가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스스로를 반성해서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아야지 하는 뭐 그런 느낌도 받고,

 

쓰라린 패배 속에서 믿었던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하는 등 뭐랄까 처절하게 사람에 대한 배신감도 느껴보고하는 뭔가 가슴속으로 들어와야 산전수전이지 그냥 어려움만 겪었다고 해서 그것이 산전수전은 아니란 것입니다.

 

각론 되는 산전, 수전, 택전, 육전에 대해 손자는 어떻게 세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지 토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행군(운용)을 함에 있어서 군대가 산으로 들어갑니다. 산에 들어갈 준비되셨습니까? 등산복 입고 등산화 챙겨 신고 이제 산에 들어왔습니다. 산에 들어가면 우선적으로 絶山依谷(절산의곡) 하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산악지형에서 군대를 운용할 때 즉 산을 넘을 때는 골짜기(계곡)를 따라 이동하라는 뜻입니다. 즉, 산의 경사가 급한 구간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이동이 수월한 골짜기를 의지해 전진하라는 지형전략의 핵심 구절로 경사가 가장 덜한 골짜기를 따라 가야 인력·물자·병마의 부담이 줄어들고, 이동이 수월해진다는 지형전략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손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산에 들어가서 전투할 때는 어디를 건너(행군)가라고 하냐면 계곡에 의지해서 이동(건너)하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왜요? 산전수전 겪으신 분은 다 압니다.

 

산꼭대기 즉 능선을 따라 이동을 하면 어떻게 되어요. 첫째 기도유지가 안됩니다. 즉 상대방에게 다 노출됩니다. 계곡을 따라서 이동하면 상대방 눈에 띄지 않고 이동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보다 수월한 이동로가 됩니다.

 

그래서 산(능선)을 지나갈 때는 어디를 따라가라고 해요? 계곡으로 이동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에게 내가 노출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라는 것입니다.

 

출세해서 돈 버신 분은 절대로 산꼭대기로 다니시면 안 됩니다. 어디로 다녀야 해요? 왜 그래요? 내가 돈 벌었습니다. 자랑하고 싶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나 돈 벌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위험해서요. 뺏어갈까 봐요. 음~ 손자병법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내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해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를 절대로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전승불복(戰勝不復)’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절대로 그걸 남에게 자랑하지 마라. 항상 남이 안 보는 계곡을 통해서 다니라는 주장은 의미가 깊습니다. 계곡이라고 하는 것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계곡의 반대가 뭐예요? 산입니다.

 

여러분들은 ‘산’이 좋아요? ‘계곡’이 좋으세요? 물이 흐르고 힘이 덜 드는 계곡이 좋아요. 아님 산 정상에서 ‘야호’하고 소리치는 것이 좋으세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성적인 사람이고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성적이라고 하잖습니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뭐랄까 화끈한 성격을 갖고 있고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를 합니다.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 제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골짜기의 신(谷神)은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곡신은 ‘도(道)의 생명력’ 또는 ‘음(陰)의 근원’을 의미하며 비어 있음 속에서 생명이 흐르는 원천을 말합니다.

 

곡신불사는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이라는 의미로, 노자가 도(道)의 근원적 힘을 ‘골짜기’에 비유해 생명과 지속성을 강조한 표현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노자에 의하면 ‘谷神’, 계곡의 신은 뭐 하지 않는다고 해요? 노자가 말하는 계곡의 신이라고 하는 것, 계곡에 무슨 정령이 있어서 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산(능선)에 비해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밑(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밑에 있는 그러한 삶의 자세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어디에 많아요? 산에 많아요. 계곡에 많아요? 여름에 나무는 어디에 많아요(우거져요). 음~ 의견이 갈려요 ㅎ. 계곡이 울창하잖아요. 왜 계곡에 그렇게 나무가 우거져 있습니까? 물이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물이 그곳으로 모입니다. 낮은 것은 영원합니다. 계곡은 산보다 자기를 낮추기 때문에 그곳으로 물이 모이고 물은 만물을 품는 것입니다. 모든 물이 모여드니까 생명체가 항상 그곳에서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납니다.

 

번성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곡이라는 것은 당연히 번성하는 것입니다. 계곡은 절대로 말라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안 죽고 번성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안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계곡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 죽으려면 낮춰야 됩니다. 내가 누군데 라고 폼 잡으면 안 됩니다. 내가 남보다 강합니다. 그런 것을  내세우는 것은 오래 사는 방법이 아닙니다.

 

뭐 생명이란 것이 오래 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가 있겠지만 결국 진정한 지혜는 나를 낮추고 남보다 나를 낮게 임할 때 그 삶이 진정한 삶의 방법이며 오래 사는 것입니다.

 

산전의 첫 번째 ‘絶山依谷(절산의곡)’이라 말은 산을 넘을 때 어디로 넘어요? 계곡으로 다니라고 합니다. 왜 계곡으로 다녀요? 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절산의곡’ 해 행군을 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 ‘視生處高(시생처고)’하라고 합니다. ‘시생처고’에서 視는 시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 길을 보며 높은 곳에 진을 치라’는 뜻으로 행군에서 유리한 고지대를 점하고, 상대가 이미 높은 곳에 있으면 그 고지에서 싸우지 말라는 지형활용 전술원칙입니다.

 

즉 내가 처하는 곳을 높게 처하라는 것으로 멀리 넓게 보라는 것입니다. 멀리 넓게 보기 위해서는 어디에 위치해야 해요?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시야가 넓으면 눈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도 많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은요 자기가 보는 만큼만 봅니다. 어떤 상황(현상)을 여러 사람이 같이 봐도 각자가 생각하는 것 만 보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봤는데도 말입니다. 결국은 뭐예요? 그만큼의 시야가 있는 사람이 보는 것과 시야가 없는 사람이 보는 것은 같은 곳을 보더라도 그 곳에 관한 정보의 양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정보의 양, 인포메이션의 양이 틀립니다. 어린아이들이 보는 것과 어른이 보는 것은 차이가 나잖습니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정보의 차이인 것입니다. 시야가 넓어야 정보의 양과 깊이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시야가 넓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인생을 살면서 넒은 시야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산전수전 겪으면 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까? 책을 많이 보고, 매번 산전수전을 경험 한다고 산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까?

 

삶에 있어서 산전수전을 겪고, 책을 보고 하면 나름대로 간접적으로 시야가 넓어지겠죠. 결국 시야라고 하는 것은 정보의 양과 깊이를 결정합니다. 이런 말 있잖습니까?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지위를 갖고 보는 눈이 커지면 생각하는 것도 좀 넓어지게 돼 있습니다.

 

세 번째로 ‘戰隆無登(전륭무등)’이라고 말을 합니다. ‘전륭무등’이라 함은 적과 전투를 할 때 상대편이 나보다 높은 위치에 융성하게 솟아 있으면 절대로 그 적을 향해서 올라가지 말란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예요? ‘시야’라든지 처한 곳이 나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사람한테 막무가내로 무조건 돌격 앞으로 하지 말란 말입니다. 6.25 전쟁사에 백마고지 전투가 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손자병법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전투교리에서 벗어난 전투입니다.

 

물론 당시 휴전 협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땅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으로 수시로 바뀌는 고지탈환 과정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해 놓았습니다. 병사들한테 돌격 앞으로 하면 당연히 희생이 큰 것이었습니다.

 

서로 간에 엄청난 희생을 치루는 것입니다. 당연히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시야를 확보하고 다른 방어선까지도 확보 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손자는 결국 전쟁을 할 때 상대방이 높은 데 있으면 무작정 거꾸로 기어 올라가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지금까지는 산전 즉 산에서 하는 전투와 관련하여 부대가 지켜야 할 상황에 대해 토파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전’에서 부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토파해 보겠습니다. 수전에 있어 첫 번째 강조하는 것은 ‘絶水必遠水(절수필원수)’입니다.

 

‘절수필원수’는 물을 건널 때 ‘물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뜻합니다. 강을 건너거나 물가에서 전투할 때는 물 가까이에서 맞서기보다, 물에서 거리를 두고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절수면 필 원수라! 이거 이해가 되세요? 물을 건너가서는 반드시 물에서 멀어져라. 뭔가 멋있는 말 같지 않습니까? 물을 건너갔으면 물에서 멀어져라. 즉 물에서 머뭇거리지 말란 말인데 물이란 것은 어려운 역경을 의미 하는 것으로 필자는 이해(해석)을 합니다.

 

역경을 건너갔으면(벗어났으면) 빨리 거기서 멀어져야지 거기서 머뭇거리다가는 물에 쓸려 내려갈 수도 있고 상대방 시야에 노출돼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상황과 관련하여 이런 말을 만들어 봅니다.

 

돈 벌었으면 돈에서 반드시 멀어져라. “득전이면 필원전”이라! 이 말은 돈이라고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돈을 왜 법니까? 왜 성공을 하려고 합니까?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 자식들, 내 주변 사람들하고 같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 아닙니까?

 

즉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행복하게 살려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껴안고 쓰지를 못하고 더 벌려고 끙끙거립니다. 돈에서 멀어지지를 못합니다. 결국 목표는 어디로 가고 그 수단인 돈에 얽매여서 평생을 돈 돈 돈  하고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번 입장에서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돈을 좀 써도 될 것 같은데 돈이 없었던 젊었을 때나 지금은 돈을 엄청 벌어 아주 성공을 했어도 돈에 얽매여서 돈 돈 돈 합니다. 이런 경우를 예로 많이 듭니다. 돈 많이 번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하고 다니는 행색은 여기저기 꿰맨 옷을 입고 다닙니다.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나 대개는 궁상맞다고 합니다. 어렵게 돈을 번 입장에서 쉽게 쓰지 못한다는 것 이해가 되지만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몇 백억 몇 천억씩 벌었습니다. 번 그 돈을 끝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번 돈을 가까운 친구, 친척,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은 부둥켜안고 죽을 때까지 돈을 더 벌려고 발버둥치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돈을 벌었으면 돈에서 멀어져야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잖습니까? 사회는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뭇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사회입니다. 자신 혼자만 돈을 다 버는 것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벌 돈도 좀 남겨두고 벌어야 합니다. 혼자 다 벌고, 내 자식 혼자 다 출세시키고, 우리 가정만 잘 되는 것,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물을 건너고 나면 건넌 그 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물에서 즉 수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계속 집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를 불러 옵니다. 목표가 뭔지를 알았고 그 목표를 이뤘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한 행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장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得魚忘筌(득어망전)’이라.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말로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통발이 무엇인지 아시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요즘으로 치면 어항입니다.

 

통발이 왜 필요했습니까? 물고기 잡기 위해서, 그럼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물고기를 잡았는데도 통발을 꽉 껴안고 있으면 결국은 목표는 물고기였는데 그 수단에서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得意忘言(득의망언)’,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말이란 본래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말에 담긴 본질을 파악했다면 도구에 불과한 말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말 입니다.

 

언어학에서 생각하는 내 의도를 ‘랑그(Langue)’라고 하고 그 의도를 따르는 것을 ‘파롤(Parole)’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정립한 개념입니다.

 

‘랑그’라고 하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의도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마음속으로 누구를 사랑합니다. 마음속으로 사랑하지만 그 의도가 아직 바깥으로 들어나진 않았습니다. 마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넘어서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생각을 바깥으로 나타냈을 때 즉 표현을 했을 때 그것을 ‘파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랑그’ 결국 내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어요?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의도가 전달이 됐으면 뭘 잊어버려야 해요? 말을 과감하게 잊어야 됩니다. 그런데 한말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글 잘 쓰시는 분들 있잖습니까? 소위 철학 하신다는 분들, 말 잘하시는 분들 보면 뭐 말이 어려워야 훌륭하고 말을 잘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제부터 필자도 어렵게 말을 하겠습니다. ㅎ 수전을 말하면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물을 건너면, 돈을 벌면 반드시 물과 돈에서 멀어지라고 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잖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지지고 볶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산전수전을 강조하는 말 속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야! 저 달을 한번 보라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뭘 봐요? 손가락을 봅니다. 이 상황 아주 중요한 상황입니다. 손가락은 뭐예요? 달을 가리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한 사람의 손가락만 보고 있단 말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가끔 절(사찰)이라든지 교회에 가보면 엄청나게 큰 불상과 어마어마한 큰 예배당 건물을 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수단인 것입니다. 즉 손가락이란 말입니다. 무엇을 가리키기 위한 것입니까? 부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키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본래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교회만 크게 세우고 사찰만 크게 세우고 금불상만 크게 만들어 놓고 그것이 마치 무슨 엄청난 목표인양! 그것들은 다 뭐예요? 앞에 말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것이 목표가 아닌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종교인들, 철학하시는 분들, 학문하시는 분들 모두는 결국 수단을 목표와 혼동해선 안 될 것이란 생각을 필자는 합니다. 잠시 논조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다시 수전으로 돌아와 각론 하겠습니다. 수전에 대해 말하면서 客絶水而來(객절수이내)라고 합니다.

 

“적(손님 객)이 강을 건너서(끊을 절, 물 수) 쳐들어올 때(올 래)”라는 뜻으로 단순히 적이 물을 건너오는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 한가운데서 적을 맞이해 공격하지 말고,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으로 ‘반제이격(半渡而擊)’ 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는 배수진을 치고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 있고, 강을 완전히 건넌 후에는 전열을 정비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 도중 반쯤 건넜을 때에 공격하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해 승리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적의 선발대는 강을 건넜고 후발대는 아직 건너지 못해, 적의 전체 조직이 둘로 쪼개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물속이나 좁은 도하 지점에서는 물리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거나 대형을 바꿀 수 없는 기동력 저하가 생기고 뒤는 강물로 막혀 있어 취약한 퇴로로 도망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 즉 상대방이 물을 완전히 건너기 전에 상대방이 불안정하고 취약한 타이밍을 포착해 공격하라는 뜻으로 역으로는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물을 막 건너옵니다. 그럴 때 물 속에 같이 들어가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물에서 떨어져 있어야 됩니다. 적은 물속에 있고 난 멀리 떨어져서 공격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똑 같이 물속에 들어가 싸운다는 것은 적의 불리함이 나에게도 똑 같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전투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진흙탕(泥田)에서 싸우는(鬪) 개(狗)"라는 뜻으로 진흙탕에서 개 두 마리가 엉겨 붙어 싸우면 어떻게 됩니까?

 

서로 물고 뜯는 동안 온몸에 진흙이 묻어 결국 둘 다 더러워지고, 누가 이기든 상처뿐인 영광만 남게 됩니다. 개판이 됩니다. 혼탁한 정치판을 두고 이전투구 한다고 하잖습니까. 여러분들 절대로 ‘이전투구’판에 끼지 마세요. 진흙탕에서 개 싸움하는 상황에는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내가 아무리 깨끗 하려고 해도 들어가면 진흙 묻은 개처럼 됩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진흙탕에서 떨어져서 바라봐야지 그 판에 들어가서 같이 싸워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과 부딪히는 경우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파악 할 줄 아는 자세(지혜)가 아주 중요합니다. 좀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 말입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고 볼 줄 아는 자세 그것이 손자가 말하는 ‘수전’인 것입니다.

 

수전을 말하면서 無迎水流(무영수류)라는 말도 합니다. ‘무영수류(無迎水流)’는 물이 흘러오는 방향(상류)을 마주 보고 적을 맞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無)'는 금지를 뜻하는 '~하지 말라'이며, '영(迎)'은 마주할 영, '수류(水流)'는 물의 흐름입니다.

 

즉, 전술적으로 ‘물이 흘러내려 오는 상류를 등진 적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며 싸우지 말라’는 수전(水戰) 및 하천 지대 행군의 절대적인 원칙을 말하는 것으로 자연의 이치와 역학적 흐름을 거스르는 싸움은 ‘백전백패’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상대가 지리적·상황적 '대세'를 쥐고 있을 때는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흐름을 이용하거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전략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영수류는 ‘산전’과 비슷한 말입니다. 물이 흘러내려오는 방향으로 내가 거꾸로 올라가면 우선 기세가 좋지 않잖습니까? 내 뒤로 물이 내려가야지 내려오는 물을 안고 거꾸로 올라가려면 나의 기세가 밀리잖습니까?

 

그러니까 ‘세’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라는 것 이예요. 한 발짝 물러서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나한테 불리할 때는 절대로 싸우지 말라. 지금 상황이 안 좋습니다. 무슨 상황입니까? 물 흐름의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서라는 것입니다.

 

“상우수말지 욕섭자대기정야(上雨水沫至 欲涉者待其定也)”란 말도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비가 오니 개울가를 조심하라’는 안전 수칙이 아닙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징후(물거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험인 상류의 폭우로 인한 거대한 홍수를 직시하는 '통찰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상류에 비가 내리면 수말(물거품)이 생깁니다. 뽀글뽀글한 물거품이 내려오게 됩니다. 그럴 때 강물을 건너려고 하는 부대가 있다면 기다렸다가 건너야 합니다. 강물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너란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강은 대부분 서북쪽 사막 지역에서 발원되는 강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류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면 하류에 물이 불어나는데 어떤 증상(증거)이 나타나느냐 하면 누런 황토가 섞인 물거품이 먼저 내려옵니다. 필자는 이 현상을 경험해 봤습니다.

 

지리산 근처에 뱀사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유행하던 ‘무전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뱀사골, 산청 지역을 갔을 때 냇가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데 상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니 계곡 물이 불어나기 전에 뽀글뽀글한 흙탕물부터 내려오는 것을 봤습니다.

 

뽀글뽀글하게 일은 물거품이 내려온 것을 보면 상류에 비가 내린 것을 알 수 있고 조금 있으면 물이 들이닥칠 것을 예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강을 건널 필요가 있으면 잠깐 기다렸다가 물이 안정되면 건너라는 것으로 산전수전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상황을 보고 아 이건 아니다. 한 두명이 물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이 물을 건너야 되기 때문에 하루 이틀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건너다 갑자기 물이 확 불어버리면 몰살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건너기 전에 내려오는 물 상태를 살펴 상류에 비가 내렸는지 등을 판단하고 물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등 상황 판단을 하는 것이 바로 수전의 내용입니다.

 

오늘 각론 주제가 산전, 수전, 택전, 육전으로 아직 택전과 육전 두 개가 더 있습니다. 손자병법을 보면 주장하는 것들이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주장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단순히 그냥 병법으로 생각하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토파해 보면 주장하는 내용들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넘어 진리로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행동 철학입니다.

 

물을 건넜으면 반드시 물에서 멀어져라. 상대방이 물을 건너올 때 같이 물에 들어가 싸우지 마라. 한 발짝 떨어져서 적을 보라. 이런 이야기들이 결국은 산전수전 인간사를 산 경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택전’을 이어 갑니다. 택전도 앞에서 각론 한 내용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택전’이라 함은 염분과 습지지형에서 하는 전투로 척(斥)은 소금기가 많아 메마르고 거친 지역으로 염전이나 염분이 많은 곳을 의미하고, 택(澤)은 습지나 늪지대로, '척택'은 곧 '염분이 많은 늪지대'를 말합니다.

 

이런 지형을 통과하거나 그곳에서 적을 마주쳤을 때 해야 할 행동지침에 대해 손자는 "絕斥澤(절척택),唯亟去無留(유극거무류), 若交軍於斥澤之中(약교군어척택지중), 必依水草而背眾樹(필의수초이배중수), 此處斥澤之軍也(차처척택지군야)"라고 합니다.

 

해석하면 "염분이 많은 늪지대인 척택을 건널 때는 신속하게 통과해야 하며 결코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이 늪지대 한가운데서 적과 부딪쳐 싸우게 된다면, 반드시 물과 풀이 있는 곳, 식수 확보 및 기동이 조금이라도 나은 곳에 의지하고 울창한 나무숲을 등지고 진을 쳐야 한다. 이것이 늪지대에서 군사를 다루는 법이다. 라고 합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말 이해가 되시죠. 늪지대에 오래 머물면 반드시 빠지게 돼 있으니까 빨리  지나가라고 하고 늪지대에서 갑자기 상대방 적군을 만났을 땐 재빨리 수초로 내 몸을 숨겨라. 그리고 나무를 등지고 있어 나무와 나를 혼동 시키게 하라. 뭐 이런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라고 할 수 있지만 산전, 수전, 택전, 육전을 겪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갑자기 나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갑자기 위가가 닥치면요. 손과 발을 어디다 둬야 되는지 당황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 없으세요? 갑작스럽게 당한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그땐 어떻게 해야 해요?

 

좀 떨어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택전’에서 언급한 갑자기 적과 만났다면 나뭇가지 등으로 내 몸을 가리라고 하는 것, 이런 것이 결국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살면서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주저하지 마세요. 난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 그렇게 못해 라고 생각하시는 분 분명 계실 것입니다.

 

옛말에 '병은 알릴수록 빨리 낫는다'고 하잖습니까. 내가 어디가 아프고 힘들 때는 주변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고, 나 지금 여기가 너무 아프고 힘드네' 라고 말이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 기꺼이 그 손을 잡아줍니다. 내가 혼자 고민할 때는 죽어도 안 풀리던 문제가, 옆 사람한테 말하므로 음 그거 거기에는 뭐를 바르면 직효야! 라고 쉽게 해결책(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혼자 끙끙 앓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에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라고 하는 자존심이나 포기 때문에 혼자 고민하고 걱정 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주변에 말을 해 자문을 구하는 것, 아주 현명한 것입니다.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아주 지혜롭고 영리한 '손자적 사유'입니다. 아주 철저한 '이성적 사유'인 것입니다. '택전(澤戰)'의 이치를 깨달은 분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주변에 알리고 자문을 구하는 걸 결코 주저하지 마세요.

 

마지막 '육전(陸戰)'에 들어갑니다. 이제 이것만 토파하면 전쟁도 다 끝나가네요ㅎ. 육전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전사후생(前低後高)'입니다. 여기서 '사(低)'는 낮을 저 자고, '생(高)'은 높을 고 자입니다. 즉, '앞은 낮게, 뒤는 높게' 지형을 잡으라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로 풍수지리에서도 강조하는 원리입니다. 평지에서 전투를 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서야 시야가 확 트입니다. 그래야 상황을 더 넓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자가 말하는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하는 것은 산전(山戰), 수전(水戰), 택전(澤戰), 육전(陸戰)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네 가지 전투의 지혜를 모두 살펴봤습니다.

 

병법에는 '인지제이(因地制宜)'라는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인지제이, 무슨 뜻이냐면 내가 처한 처지와 상황에 맞게 최선의 방책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내가 처한 곳이 산이든, 물이든, 늪지대든, 평지든 어떤 곳이든 처한 상황에 맞게, 그 환경에 맞는 해결책을 유연하게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 발휘해야 하는 진짜 지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해결 방법을 구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주저앉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손자는 말합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나쁜 상황도 없고, 절대적으로 좋은 상황도 없다고 합니다.

 

결국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입니까? 바로 나(우리) 자신입니다. 이것이 진짜 손자적 생각의 본질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까 말한 '높은 곳'이 무조건 좋을 것 같죠? 아닙니다. 높은 곳이 좋을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적으로 나에게 독이 되고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형도, 환경도, 내 처지도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오직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방법을 구상해 내느냐가 승패를 가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결국 내가 그 상황에 기초해서 나만의 방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좋은 처지도 영원히 나쁜 처지도 없는 것입니다. 그 나쁜 처지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 싱가포르 아시죠? 말레이시아 반도 끝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입니다. 처음 독립했을 때 싱가포르는 땅도 좁고, 천연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어서 말레이시아에서 사다 먹어야 했던,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지를 탓하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오히려 세계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라는 최고의 중계무역 기지로 바꾸었습니다. 가장 나쁜 상황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낸 것, 이것이 바로 손자가 말한 ‘인지제이’의 진짜 본보기입니다.

 

싱가포르! 정말 천연자원 하나 없고, 마실 물조차 없어서 말레이시아에서 파이프라인으로 물을 끌어다 쓰던 그 척박하고 조그만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2025년)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있으며 1인당 $90,674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국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난 걸까요?

 

바로 자신들의 그 '나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서, 최고의 방책을 만들어내는 '인지제이(因地制宜)'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는 눈을 돌렸습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그 길목, 바로 '말라카 해협'이라는 지리적 이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비록 땅은 작고 척박하지만 이 길목을 활용해 중계 무역을 일으켰고,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생산되는 구리, 주석, 고무 같은 원자재들을 자기 나라로 집산시켜서 전 세계로 수출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관광 산업을 키우고, 석유 시추 및 화학 산업을 일으켰으며, 세계적인 금융 서비스업까지 정착시켰습니다.

 

철저하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가장 유리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 어마어마한 세계적 부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나쁜 상황이 아닙니다. 혹자는 우리나라는 위에는 중국, 밑에는 일본에 꼭 끼어 꼼짝도 못한다고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라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손자 적 사유로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나라가 힘만 제대로 기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고, 일본으로도 치고 나갈 수 있는 엄청난 위치입니다. 대륙으로도 진출하고 해양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끼어 있어서 불리한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장악할 수 있는 최고의 요충지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처지에 맞는 방책을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발휘해야 할 진정한 ‘인지제이’의 지혜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근대 100년사 동안 정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라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대한민국만큼 산전(山戰), 수전(水戰), 택전(澤戰), 육전(陸戰)을 이토록 치열하게 다 겪은 나라는 없습니다.

 

조선 왕조에서 갑자기 일제강점기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 미군정, 군부 독재 정치, 그리고 마침내 문민정치와 국민정치까지…… 인류 역사가 경험할 수 있는 온갖 격변과 정치 체제를 우리는 단 100년 만에 다 겪었습니다.

 

옛날에 필자 어머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예야, 내 인생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10권도 더 된다.' 아마 필자의 손자병법 각론을 듣는 분들이나 우리 부모님 세대 중에 살아온 삶이 소설 열 권 안 나오시는 분 없을 것입니다.

 

그 모진 세월 동안 끊임없이 밀려오는 산전수전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며 살아오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눈물겨운 역사가, 우리 부모님들의 그 모진 삶이 대한민국의 어마어마한 '장점'이자 강력한 '내공'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산전, 수전, 택전, 육전뿐만 아니라 그 숱한 시련을 다 겪었고, 저 눈물겹던 IMF 외환위기까지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정도로 단련됐으면, 앞으로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상황을 항상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이 이미 우리 DNA에 장착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세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그 어떤 나라도 시련 없이 세계적인 일류 국가가 된 나라는 없습니다.

 

위대한 미국을 보세요. 그 처절했던 독립전쟁을 겪고,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해 나간 '서부 프론티어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강대국이 된 것 아닙니까?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 하고, 그 시련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창조적인 힘'이 탄생합니다. 필자는 그 위대한 힘이 바로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함께 토파(공부)한 손자병법의 지혜처럼, 우리 국민들은 이미 산전수전을 다 이겨내셨기에 얼마든지 더 위대하고 창조적인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산전수전'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39강에서는 “주춧돌이 젖으면 우산을 편다”라는 주제로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대비하는 손자병법의 놀라운 각론을 이어가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태권도 9단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http://www.ctu.ne.kr - 태권도지도자교육

http://www.taekwondoforum.net - 태권도포럼

http://www.moodotaekwondo.com - 무도태권도

金烏 신성환 - 이력보기 ☜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