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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變篇(구변편) 37강 “융통성이 경쟁력이다” 신성환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36강 “현장 상황을 주목하라”에 이어 37강 “융통성이 경쟁력이다”에 대해 각론 합니다.
오늘 손자병법 각론이 서른일곱 번째 각론입니다. 전체 43편의 강의 중 37번째 강의이며 손자병법 13편 중 8편으로 전체 강의에서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들어갑니다. 각론 할 내용은 여덟 번째 九變篇(구변편) “융통성이 경쟁력이다”입니다.
‘九變’ 아홉 ‘구’자에 변화할 ‘변’자로 구(9)라는 숫자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아홉이라는 숫자 ‘9’라는 숫자는 동양에서 보면 제일 큰 숫자입니다.
있잖습니까? ‘구룡’이라고 용 아홉 마리 있잖습니까? 용 아홉 마리는 아주 높은 최고를 상징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의 옷에는 용 아홉 마리가 수놓아 집니다. 가장 높은 수가 9입니다.
‘變’은 변하는 것으로 ‘九變’이라는 것은 뭐예요? 아홉 번 변하는 것입니까? 음 엄청나게 많이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자병법 13편중 9번째 편인 九變篇의 내용은 ‘군대를 전장에 끌고 나가면 수없이 변화는 현장 상황처럼 상황에 따라 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세월아 가거라(변해라) 나는 안 변한다. 이렇게 하면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변이란 것은 수없이 변하는 전쟁 상황에 같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보다 훨씬 더 높은 전력의 우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변해야 생존력이 높아집니다. 자연계에 있는 모든 동식물 중에서 어떤 종이 가장 오래 살아남습니까? 카멜레온 있잖습니까? 카멜레온은 적이 가까이 오면 주변 상황(환경)인 나무 색깔 등 주변 환경에 맞게 자기 색깔을 변하시킵니다.
그래야 안 잡혀 먹지 않습니까?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난 안 변한다고 그냥 고집부리고 버티면 오래 살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ㅎ
‘九變’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상황의 변화에 맞게끔 나를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변화한 사람이 생존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고집이란 말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합니다. 고집이 세다. 그렇습니다. ‘固執’이라 말을 파자 하면 곧을 ‘固’ 잡을 ‘執’으로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집이라 하는 것은 그냥 꽉 잡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서는 이거(잡은 거) 안 놓겠다고 하는 것으로 안 놓다가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고집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칙이 있고 내가 한 번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야겠다는 그런 원칙 있는 고집은 좋은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 태권도계 조직 관계자들로부터 고집이 너무 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인정 합니다. 하지만 필자가 고수하는 고집은 태권도가 추구하는 옳고 그름을 망각하고 자신의 개인 영달을 위해 태권도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정신을 버리고 행동하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부(타협)하며, 장악한 조직과 구성원들을 이용하고, 모함하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되었다고 핵심임원들과 타협하지 않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 고집이 세다, 강성이라고 하는 것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각론이 잠시 다른 곳으로 흘렀습니다.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는데, 정말 쓸데없는데, 고집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집 세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그만큼 상황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손자는 ‘九變篇’에서 무한히 변하라고 강조합니다. ‘九’라고 하는 것,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많이 변하라는 것이잖습니까?
많이 변하면 변할수록 생존력은 높아집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수히 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한다는 것, 상황에 적응 한다는 것,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수히 변한다는 것, 즉 적응한다는 것, 폄훼해 표현하면 기회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합니다.
변한다는 것은 기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 약사 빠르게 눈치를 봐서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옳고 그름은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는 기회주위 적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무한히 변하라라고 하는 것, 어떤 기준(상황)에서 변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주 중요한 논제(기준)입니다.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판단된 결과를 갖고 변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치보고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 계산에 의한 기회주의 행동하고는 전혀 다른 조직 전체를 위한 대의명분이 있는 그런 철저한 변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 혼자가 아니라 수십만 명의 군대를 끌고 가서 상황에 안 맞추면 어떻게 돼요? 완전 몰살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변화라는 것, 손자가 말하는 변화는 다양한 상황에 합리(타당)적으로 변화(대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쟁에서 중요한 상황을 하나 들라면 뭐가 있어요? 지형입니다. 전쟁터란 것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산악 지형도 있고, 물, 늪지대, 염분 지역, 사막 지역 등 아주 다양한 지역이 있을 것입니다.
그 지역의 상황에 따라서 무한히 변화시켜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처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손자는 ‘九變篇’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문장을 보면서 손자가 주장하는 상황에 어떻게 변해(대처)야 하는지 같이 토파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圮地無舍(비지무사)라는 말을 합니다. ‘비지무사’라 함은 험한 땅(圮地)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손자는 손자병법 총 13편중에서 여덟 번째 편 제목으로 구변이라 정의하고 변하라, 얼마큼 변해요, 무한히 변해라, 변하면 변할수록 생존력은 높아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고 고집 부리다가는 완전히 망한다. 그러니 많이 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제일 좋은 것은 나이(상황)에 맞게 변하는 것입니다. 인생 칠십을 살면 칠십 번 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아! 이 말은 필자가 하는 말이 아니라 공자가 한 말입니다. 칠십 번 변하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공자는 말합니다.
손자는 지역(전쟁터) 상황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비지, 부지, 절지, 위지, 사지 이런 말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지로 내 몬다’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비지’는 콩을 갈아서 콩국을 만들 때 나오는 비지가 아니라 崩壞(붕괴) 위험이 있는 지역입니다. 군대를 끌고 갔는데 붕괴 위험이 있는 지형에 있으면 절대로 뭐 하지 않아야 해요? 붕괴위험이 있는 지역에 부대를 주둔시키면 안 되지 않습니까?
붕괴 위험이 있는 지형에 군영을 갖추면 그 군대는 어떻게 돼요? 폭삭 망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망하는 회사주식에 투자는 안 하시죠? 나는 망해도 좋아요. 끝까지 내 고집으로 투자해 반드시 백배 천배 벌 겁니다. 그렇게 버는 사람은 백 명 중에 한 명일 것입니다.
상황을 판단해 무너질 땅 같으면 절대로 그곳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머물 겁니까?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도착을 했으니 이곳에 주둔해야 한다고 주둔하면 어떻게 돼요? 변하라고 하잖습니까? 도착해 보니 사거리 지역으로 동서남북으로 다 튀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해요? ‘합교’ 주변의 제후국들하고 외교를 잘 맺어놔야 합니다. 프리랜서 작가들은 뭐가 제일 중요해요?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위치한 지역 상황이 동서남북으로 다 뚫려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쪽에서 공격해 올지 모른단 말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외교 관계를 맺어 놓으란 말입니다. ‘합교’ 주변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이끌고 도착해 보니 주변이 절지입니다. ‘절지’는 황무지입니다. 황무지에서는 어떻게 변해야 해요? 머무르지 말라고 합니다. 왜요? 황무지에 머물렀다가 먹을 물, 식량 등, 말 그대로 황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낭패를 볼 것입니다. 황무지에는 머물지 말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圍地’를 언급합니다. 圍자는 포위할 위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지형에 갔는데 그 지형이 포위가 충분히 예상되는 지역입니다. 포위가 충분히 예상되는 지역이 뭐예요? 이곳에 한 번 갇히면 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안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어 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위기를 빠져나갈 계획을 반드시 세워 놓으란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무계획이 상 계획 이예요? ㅎ.
난 계획이 없다. 그냥 그렇게 한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은행 금리가 굉장히 내려갔습니다. 금리가 내려가서 집을 담보로 대출해서 집 사고, 주식 사고, 대출을 받아서 갭 투자(Gap Investment)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값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뛰었습니다. 말 그대로 갭 투자한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몇 개월 사이에 몇 십 년 대기업에서 근무한 사람 연봉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당장은 은행 금리가 낮으니 돈 빌려 갖고 집사고 주식 샀는데 계속 금리가 낮을 것 같습니까? 음 금리가 오르면 골치 아픕니다. 집은 사놨는데 은행 이자는 점점 올라가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꼼짝 못하고 반드시 금리에 포위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뭘 해야 해요? 예측을 해야 합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한 달 월급 중 얼마가 이자로 나가고 그때는 어떻게 어떤 부동산을 빼서 대처를 한다는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모르겠어요. 오르면 오르는 대로 버티다 보면 다시 좋아지겠죠 뭐 이런 식으로, 그냥 무조건 투자하고 무조건 주식 사고해서 같이 덩달아 가다가는 심중 팔구 IMF 때처럼 망합니다.
IMF 때는 기업이 망했지만 대책 없이 빛내서 투자한 상황에서는 금리가 올라 전체적으로 경제적 위기가 오면 누가 망해요? 집안이 망합니다. 과거에는 IMF로 인해 기업이 망했지만 이번에는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상황을 예측을 하란 말입니다. 死地는 뭐예요? 죽을 땅입니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고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변해요?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손자는 아홉 번 변화라고 하는 이 여덟 번째 편에서 처하는 상황이 다 틀립니다. 붕괴 위험이 있는 땅, 사거리가 터져 있는 땅, 황무지, 포위될 땅, 죽을 땅, 등 여러 상황에 처할 경우에 어떻게 하라고 해요?
각각 대처(변화)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것이 뭐예요? 바로 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 가되세요? 필자는 손자병법이 의미가 있는 것이 손자가 주장하는 이런 것입니다. 그냥 고집적으로 하나만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처하는 상황에 따라서 무한히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변화는 어떻게 해야 해요? 지혜로워야 합니다. 당연히 지혜로워야 합니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상황 파악을 하는데 있어서는 자신한테 유리하게 파악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마 그렇게 되겠어? 금리가 갑자기 올라가면 우리나라가 망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지 라고 자기한테 유리하게 판단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상황에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랬을 때 정확한 상황 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상황에 맞는 나의 행동(처신)이 상황에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절지’ 있잖습니까? 황무지에 오래 머물지 말라는 각론을 하면서 떠 오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사기 사건이었던 보물선 사건입니다. 다를 기억들 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침몰된 보물선이 바다 속에 있다고 그 보물선만 인양하면 떼돈을 벌수 있다고 너도나도 투자를 했던 사건이 있었잖습니까? 나오지도 않는 보물 찾겠다고 바다 속을 계속 팠던 사건 말입니다.
정말 황당한 것입니다. 물론 사기 치려고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계획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는 바다 속을 계속 뒤져서 보물을 찾겠다고, 고집스럽게 매달린 즉 한우물만 판 신념(?) 그거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파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해요? 빨리 포기하고 다른 우물을 파야지 그저 나는 한 우물을 파겠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명분상으로 좋은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명분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다른 상황으로 빨리 변하는 것, 그것이 손자가 말하는 변하라 ‘九變篇’의 핵심입니다.
入境問俗(입경문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내용은 ‘그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의 풍속을 물어 따르라’는 뜻입니다. 타국, 타지에 들어갈 때는 금기 사항. 그 지역 풍속을 먼저 확인해 범하는 일을 피하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춘추시대 때 노나라에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남편은 신발을 잘 짜고 부인은 배를 잘 짜서 모자를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 이 노나라 부부가 하루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기술을 갖고 노나라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조나라에 가서 장사를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고는 신발과 모자를 만들어 조나라에 가서 팔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조나라에 갔더니 조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산발하고 다니고,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다니는 것입니다. 조나라에서는 아무리 신발 잘 만들고 모자 잘 만들어서 팔아봤자 팔리겠어요? 대박이 나겠어요?
이 고사성어의 교훈은 ‘상대방에 대해서 상황 판단도 못하고 그저 내가 잘하는 것, 갖고 가서 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란 것입니다.
30여 년 전(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을 때 우리 상공인들은 중국에 가서 라면 한 개만 팔아도 10억 개를 판다고 무조건 중국에 가면 성공 한다고 중국에 간 사람들 굉장히 많았습니다. 상황 판단도 안 해 놓고 하면 어떻게 돼요.
그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무엇을 물어요? 상황을 알고 들어가야 합니다. 상황을 모를 때는 그러니까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해요? 물어봐야합니다. 묻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인색한 것 같습니다. 특히 태권도인들은! ㅎ 묻는 것과 관련해 필자는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필자가 태권도계의 빌게이츠란 별칭을 얻은 이유는 바로 묻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처음(1981년) 태권도장을 개설해 운영함 있어서 부모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수련생관리에 컴퓨터를 도입해 관리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밤 세워 새로운 세계를 터득해 나가던 상황이 바로 손자의 ‘변하라 무한히 변하란’ 말에 충실하게 임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 상황이 기반이 돼 무한한 발전을 해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수련생전산관리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고 현재는 유투브 방송은 물론 컨텐츠 제작까지 직접 하므로 나름 태권도 발전에 기여 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바로 변하라는 손자의 주장에 충실했던 결과입니다.
남한테 묻는 것을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해 해소해야 합니다. 우리는 잊고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쉴 틈 없이 재잘 되며 부모님에게 질문 하던 것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그 재잘거림에 귀찮은 내색 없이 답변(물음해소)해 주던 부모님의 마음과 쉴 틈 없이 묻는(질문) 그 상황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것이 손자가 주장하는 사유입니다. 그러니까 손자 적 사유라고 하는 것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판단 근거에 따라서 나의 행동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때 군대(조직)는 전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九變篇’은 오늘 각론으로 모두 토파합니다. 구변편이 생각보다 주장하는 것이 짧습니다. 하지만 아주 명확합니다. ‘구변편’을 토파하는데 있어서 계속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앞에서 각론 한 여러 가지 상황 외에 다른 상황을 토파해보겠습니다. ‘途有所不由(도유소부유)’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라는 말도 같이 합니다. ‘九變篇’의 핵심 원칙 중 하나로, 모든 명령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과 ‘길에는 지나가지 못할 길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투를 함에 있어 무조건적으로 추격, 공격하기보다는 사리와 상황을 분별해 진입 또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길을 고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계속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길이 좋아도 즉 순탄하게 지나갈 것 같아도 면밀히 살펴서 안전을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길이 순탄하고 나에게 정말 이익이 보이더라도 가서는 안 될 길이 있잖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길을, 그 먹음직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돼요? 처음에는 그 길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가다 보면 어떻게 돼요? 푹 빠집니다. 반드시 빠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요? 세상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정치가가 가서는 안 될 길이 있고, 교육자가 가서는 안 될 길이 있고, 무도(태권도)인이 가서는 안 될 길이 있잖습니까? 학생도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가지 말아야 할 즉 변해야 할 상황이 있단 말입니다. 가야 될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되시죠? 아무리 적의 군대가 보잘것없어도 가서 때리면(공격) 이길 것 같아도 공격해서는 안 될 군대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습니다. 가서 때릴 힘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때려서는 안 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때려서는 안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예요? 형제, 친척, 친구들이잖습니까?
왜요? 한 번 보고 안 볼 것 아니잖습니까? 뭐 안 보고 살죠 뭐, 그래요 인생을 살면서 주변에 친구 등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해도 공격해선 안 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자가 말하는 변하라고 하는 구변의 핵심입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무한한 변화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城’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차지하고 싶어도, 공격하면 바로 먹을 수 있어 보여도 공격해서는 안 될 성이 있다고 손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보로 잡혀선 안 될 집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 집이예요? 부모님 집입니다. 내 집 잡혀서 사업하는 것이야 괜찮습니다. 내가 이번에 사업이 잘되면 크게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집 좀 담보로 잡아 주세요. 본인의 집 외에 남의 집을 잡아서 특히 부모님 집을 담보로 사업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부모님 집은 건들면 안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아! ‘城’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성이라고 해도 공격해서는 안 될 성이 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다퉈서는 안 될 땅이 있다. 손자는 계속 주장합니다.
‘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도 받아서는 안 될 명령이 있다고 합니다. 병사가 아닌 일반 백성을 죽이라는 명령을 실행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받아서는 안 될 명령이 있는 것입니다 좋은 길, 좋은 땅이지만 내가 취해서는 안 될 땅 이 있고, 공격해선 안 될 사람이 있다고 손자는 주장합니다.
산다는 것이 뭐예요? 전쟁입니다. 가끔 TV뉴스에서 형제들이 부모의 유산을 놓고 싸우는 것을 봅니다. 부모님들이 유산을 엄청나게 물려 놓고 가니까 형제들끼리 서로가 아귀다툼을 합니다. 왜 싸우는 것입니까?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그렇게 싸워서 재산을 좀 더 가져서 잘 살 것 같죠, 예 잘 삽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팔구십이 넘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그때서 후회를 합니다. 아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나와 피를 나눈 형제한테 등지고,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으르렁대며 다툼을 했는지 나이가 들어서 후회를 합니다. 속된 말로 이미 버스는 지나갔는데, 후회를 해 보니 되돌릴 수 없잖습니까?
필자는 손자병법을 토파하면서 가슴 깊이 새깁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어떻게 해야 해요. 더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시죠? 그것만 가슴에 새기시면 됩니다.
현대의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는 다릅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원리를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는 것은 원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외워서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쟁과 비유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에는 손자가 살던 시대에서와 같은 전쟁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병법을 공부하는 것은 치열한 삶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 역시 전쟁입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상황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말 있잖습니까? 小貪大失(소탐대실), 작은 것 탐내다가 큰 것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작은 것은 뭐고 큰 것이 뭐예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돈 같은 것을 조금 더 가지려다 진정한 친구를 잃을 수도 있고, 나와 피를 나눈 형제들을 잃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눈앞의 작은 승리에 집착하다가, 당장의 작은 이익인 '돈'과 '명예'를 쫓다가, 인생에서 훨씬 소중한 가치인 '진정한 친구'나 '혈육의 정'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손자는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全勝)'을 최선으로 쳤습니다. 이 주장은 삶에 있어서 소중한 인연과 가치를 지키면서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승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小貪大失’ 말 그대로 작은 것 탐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가 있는 이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소탐대실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심모원려(深謀遠慮)’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심모원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을 대처함에 있어 깊이 고민하고 멀리 내다보는 힘이 없다면, 우리는 당장의 작은 이익에 흔들려 소탐대실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손자병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무엇이 '작은 것'이고 무엇이 '큰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과 삶의 철학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깊이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손자는 계속 주장합니다. 단순히 가져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고 일을 온전하게 성사시키기 위해서 멀리 보라고 합니다.
당장 앞에 있는 길이 아무리 좋더라도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다고 합니다. 왜요? 그 길이 좋다고 생각 없이 그 길을 가다간 매복에 걸릴 수 있고, 쉽게 점령할 수 있는 먹음직한 성과 아무리 좋은 땅이 있더라도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될 성과 땅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심모원려(深謀遠慮)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멀리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열려진 마음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부인과 첩 하나를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 제나라 사람은 밖에만 나갔다 오면 처와 첩에게 “내가 말이야 밖에서 배가 부르도록 맛있는 고기와 술을 먹고 배가 이렇게 불러서 왔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와 첩이 “누구랑 드셨는데요?” 라고 물으면 아 이 나라의 유명한 정치가들을 내가 다 알거든 그래서 매일 나에게 술과 고기를 사줘 라고 자랑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안다고 자랑은 하는데, 그렇게 귀한 사람들을 만난다는데 집에는 한 명도 찾아온 적이 없단 말입니다. 그거 참 이상하다고 처와 첩이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처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미행합니다.
집을 나선 남편은 부인이 미행하는 것을 모른 채 평소 하던 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시내로 들어갔는데 주변 사람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어디로 가냐면 동쪽 성곽 밑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을 지나 망우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막 상례를 치르고 난 제사 음식을 달라고 해서 그것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동쪽 묘지에서 얻어먹은 것이 부족하니까 서쪽으로 가서 거기서 또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남편이 나가서 배불리 먹고 오는 방법이 뭐예요? 제사 음식을 구결해서 얻어먹고 오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는 뭐라고 자랑을 했습니까? 아! 나 오늘 높은 사람하고 좋은 거 많이 먹었다고 부인과 첩에게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남편을 미행했던 부인은 돌아와서 첩에게 남편이 매일 하는 행동을 말하고는 둘이서 펑펑 울었습니다. 남편이라고 하는 것은 ‘仰望終身(앙망종신)’의 대상이 아닙니까? 일생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내 몸을 의탁하는 하늘같은 존재 아닙니까?
그런데 평생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나의 태양 같은 존재인 남편이 나가서 그렇게 비굴하게 밥을 얻어먹고 와서는 거드름을 피우니 실망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은 자신이 한 행동이 처와 첩에게 다 들통이 나 실망해 울고 있는데 들어와서는 왜 우느냐고 합니다.
맹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나라 사람이 밖에서 구걸하고 다니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밖에서 부귀를 구하는 방법이, 이 濟나라 사람이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권력자에게 빌부터서 나 자리 하나 달라고 하는 것이나, 공동묘지에서 상례를 치루고 난 제사 음식을 얻어먹는 것이나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음~ 뭐 뜨끔하신 모양입니다 ㅎ
세상 살아가는 것, 어떻게 보면 상황만 다를 뿐이지 공동묘지에 가서 제사 음식 얻어먹는 것이나, 자리하나 얻으려고 옳고 그름을 팽겨 치고 아부하며, 영혼 없는 좀비로 조직의 목적에 반하는 거수기 행위를 하는 것이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富貴(부귀)’를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행위)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태권도계 조직의 핵심 임원과 적폐세력이라고 지목되는 사람들은 제나라 사람이 밖에서 배불리 얻어먹고 들어와 거드름 피우는 남편의 행동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정도를 벗어난 부귀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로 부터 존경 받지 못합니다. 앞에 각론 했습니다. 나이 들면 어떻게 자책한다고 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아!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냥 좀 덜 먹고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 걸, 왜 더 가지려 바둥거렸을까? 내가 왜 친한 친구 뒤통수를 치고, 형제와 척을 졌을까? 이런 후회를 한단 말입니다.
손자는 ‘구변편’에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얼른 생각을 접으라고 합니다. 즉 변하란 말을 계속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將不通於九變之利者(장부통어구변지리자)’ 장군은 通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장수는 아홉 가지 변화(九變)에 통달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무궁하게 변하는 변화의 이치, 이로움에 달통해 있는 장군이 진정으로 군대를 다루는 법을 아는 장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가 말하는 이 말이 ‘구변편’의 핵심입니다. 조직의 리더는 뭐에 통에 있어야 돼요? 구변의 이익에 통해 있어야 합니다. 구변이 뭐였습니까?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모두의 이익에 따라서 변화는 원리에 달통해 있어야 한다. 즉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각론 제목이 뭐예요? ‘融通性(융통성)’입니다.
융통성! 나쁜 뜻인 것 같죠? 아닙니다. 융통성은 진짜 좋은 말입니다. 장군(리더)이라 함은 융통성이 있어야 진정으로 군대(조직)를 부리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손자는 이렇게 구변편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중용이란 말 아시죠? ‘중용의 도’, 중용의 ‘중’자는 ‘과’ 넘치고 ‘불급’ 부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는 것이 뭐예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은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은 ‘평상’입니다. 평상, 여름밤에 누워 자는 평상이 아니라 ‘항상’을 말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중용’으로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항상(恒常) always 언제나 늘이란 말입니다.
필자는 ‘융통성’이라 하는 것은 ‘중용의 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중용의 도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무도 수련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여러분들! 평균대 위에 올라가 보셨습니까? 평균대 위에 올라서면 어떻게 됩니까? 좌우 평형 즉 무게 중심을 잘 유지(잡아야)해야 떨어지지 않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융통성이라 함은 평균대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중심을 잡는 것이 바로 중용이고 이 중용은 항상(恒常), always, 언제나, 늘 이어야 평균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균대는 궁극적으로 삶입니다.
평균대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 정지된 모습인 것 같지만 정지돼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세 촬영을 하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언제나 늘 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조건(상황)이 모두 충족해야 평균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靜中動’이란 말이 뭐예요?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고요한 것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고요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융통성 없이 한쪽으로 기울면 당연히 넘어집니다. 넘어진다는 것은 삶으로 치면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이고, 기업으로 치면 망하는 것입니다. 태권도로 치면 태권도계 조직을 운영하는 핵심임원으로서 태권도계 적폐에 속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중용의 도’라고 하는 것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언제나 늘 자기 평형성을 유지하는 옳고 그름, 고요함 속에 끊임없는 자기 운동성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용이고 융통성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또한 중용의 도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always 이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데 가끔 하기는 쉽습니다. 한 번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어렵습니까? 언제나 always 늘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어버이날 부모님께 카네이션 달아드리고 하루 정성을 다해 極盡히 모시기는 쉬운데 365일 평소에 언제나 늘 그렇게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중용’이라고 하는 것,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항상 늘 자기의 평형성을 지닌다는 것, 그거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필자는 ‘중용’적인 삶,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삶이야말로 지금 각론하고 있는 ‘융통성’ 있는 삶이고, 상황에 따른 끊임없이 변화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생존력이 크지 않습니다. 변해야 생존력이 큽니다. 장군(리더)은 끊임없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통해져 있어야 진정으로 군대를 부리는 장군이라 할 것입니다.
상황은 단순히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손자는 강조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무시기부공(無恃其不攻)’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내가 공격받지 못하도록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을 믿어라’는 뜻입니다. 즉, 상대의 행동을 믿기보다 내 방어·대비를 확고히 하라는 전쟁철학의 핵심 원칙입니다.
부연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비’에 의지해 대응하라는 의미라고 필자는 해석합니다. ‘無恃其不攻’ 손자병법 구변편의 위대한 결론입니다. 끊임없이 상황을 판단하고 냉철한 지혜로 분석하고 판단된 상황분석에 따라서 내 자신을 끊임없이 변통할 때 장군은 유능한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한테 오지 않겠지 그걸 믿지 말아야 합니다. 뭘 믿어요? 어떤 상대가 공격을 해와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믿으란 말입니다. 요행을 믿지 마세요. 저 사람이, 설마라고 하는 요행을 믿지 말고 어떤 누가 나한테 공격해 와도 내가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나를 만들란 말입니다.
이 말은 상황은 누가 만드는 거예요?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융통성이라는 것은 상황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판단하고 판단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할지 융통성을 부린다는 것은 상황을 내가 끌고 가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자세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뭘 믿지 말아요. 상대방 적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그 막연한 것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해요? 어떤 누구도 공격하지 못할 내가 되는 것을 믿으란 말입니다. 결국 상황은 누가 만들어요?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융통성을 토파하고 있는데 ‘융통성’이라는 것에 대해 필자는 약간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융통성이 너무 많아 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너무 왔다 갔다 기회주의자적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 부정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필자와 같은 고정 관념적 사고가 융통성과 관련하여 갖는 사고일 것입니다. 융통성이 좋은 의미로 쓰일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라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분이 있고 고집이 있고 내 원칙이 있는데 상황이 변합니다. 그 변하는 상황에 따라 변해야 되겠는가? 라고 항변하는 것 멋있습니다. 고집과 명분은 원칙을 바탕으로 할 때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왜? 아름답습니까? 확실한 명분이 있다는 것,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고집과 변해야 될 때 변하지 않는 것, 무지의 소치에 의한 고집은 버려야 합니다.
‘융통성’이라는 말! 익히 알고 있는 말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융통성을 이해해 상황에 합리적 행동을 하는 즉 타당한 처세를 하는 말이 되도록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적 사고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재인식 되었으면 합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절대로 융통성이 없습니다. ‘융통성’은 중용을 바탕으로 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항상(always) 나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active한 역동성을 발휘할 때 진정한 융통성이 내포된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런 융통성이 ‘창조성’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創造性 이라는 것은 상황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상황에 단순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creative하게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창조성, 역동성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항시성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자기 균형을 잡는 평형성이 유지되는 ‘융통성’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기를 소망합니다.
‘구변편’ 각론에서 끊임없이 상황 변화에 따른 나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필자는 융통성은 단순히 소극적인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creative하고, 영원하고, 자기 평형성을 갖는 진정한 ‘중용의 도’가 내재된 당당함이 살아있는 삶의 모습이라 결론합니다. 융통성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38강에서는 “산전수전”에 대해서 각론 합니다. 감사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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