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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爭篇(군쟁편) 35강 “의사소통이 힘이다”

신성환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34강 “정보(아는 것)가 힘이다”에 이어 35강 “의사소통이 힘이다”에 대해 각론 합니다.

 

손자병법 각론이 벌써 서른다섯 번째 각론입니다. 굉장히 많이 각론(토파)됐습니다. 손자병법을 필자와 같이 토파하면서 혹시 이런 생각 안 드셨습니까? 여러분들이 만약 장군이 돼서 내 휘하에 있는 병사들 수십만 명을 통솔해 전장에 나갔습니다.

 

수십만 명의 병사를 통솔해 전쟁터에 갔을 때 혹시 이런 고민 안 해 보실까요? 적과 전쟁이 시작돼서 내가 공격 앞으로 하고 명령을 하니까 병사들 그 누구도 내 명령을 못 듣는 것입니다 즉 내가 명령한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무전기나 확성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솔하는 병사(부대)들이 명령하는 말을 못 듣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지금 수십만 명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데 장군이 지시하는 명령 전달이 되겠습니까?

 

공격 앞으로 하는 그 명령이 잘 들리겠어요? 옆 사람은 들리는데 저 끝에 있는 사람은 안 들리지 않겠습니까? 한번 상황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장군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내리는 명령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시선을 집중시켜요? 수화로 해요? 음 그래요 수화로 해요. 내가 하는 수화내용이 수십만 명에게 다 전달이 될까요? 전혀 전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는 말합니다. 군대에서 중요한 것은, 수십만 명의 대규모 병사가 전투에 들어가면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내가 공격하라고 하면 명령 즉시 수십만 명 병사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공격해 주고 후퇴하라고 하면 모두가 하나같이 후퇴해 주는 것이 최고의 부대라고 합니다. 명령을 내렸는데 어떤 사람은 공격하고 어떤 사람은 후퇴하고 하면 되겠습니까? 야! 지금 공격하래, 아니야 후퇴하라고 했어, 이러면 그 군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앞으로 하면 그냥 쫙 갔다가 뒤로 하면 후다닥 빠지는 그런 조직이 훈련이 잘된 그야 말로 강한 군대고 조직 아니겠습니까? 손자는 바로 명령이 일사분란하게 전달되고 명령에 말 그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고민했던 것입니다.

 

‘의사소통’ 한다는 것이 말 같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두 사람만 있어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됩니다. 음식점에서 뭐 시키는데도 서로 의견 통일이 안 돼 서로 신랑이(?)를 하지 않습니까? 두 명인 돼도 소통이 잘 안되는데 수십만 명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래전 TV(방송)에서 유행했던 게임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편을 나눠 릴레이로 한사람이 귓속말로 어떤 말을 하고 이어서 그 말을 팀원에게 전달해서 마지막 전달 받는 사람이 확인한 말이 처음 전달한 사람이 한 말과 일치하는지를 가리는 게임 있잖습니까?

 

처음 귓속말로 ‘사랑’이라고 했는데 다음 사람은 ‘사탕’이라고 하고 그 다음 사람은 ‘사망’이라고 대여섯 명 건너가면 말이 완전히 다른 말로 바뀌지 않습니까?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가족 간에 한집에 살면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됩니까? 아! 잘 안 되신다고요. 잘된다고요. 음, 당연히 잘돼야 합니다. 하지만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경숙이 어 부인’ 하고 소통이 잘 안됩니다.

 

부모 자식 간에, 부부간에 벽이 있습니다. 서로 간 소통을 잘 하려면 일단 마음을 열어놓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야 서로 말이 통합니다.

 

각자 방문 딱 걸어 잠그고 방에 들어가면 의사소통은 그냥 거기서 단절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간에도 서로 소통이 안 되는데 수십만 명 군대를 하나로 소통을 하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손자가 소통을 강조하면서 굉장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손자가 고민했던 것은 병사들 눈과 귀를 하나로 통일시킬 것일까? 어떻게 그 많은 병사들의 마음과 느낌(감각)을 하나로 통일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자가 내놓은 답(방법)은 병사들 눈과 귀를 이렇게 통일 시키라고 손자병법 ‘군쟁편’ 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방법을 말합니다. 첫 번째로 청각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청각적인 방법은 오더불한 시그널입니다.

 

청각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청각적이라는 것이 뭐예요? 귀를 통해서 전달하고 듣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전쟁터에 가면 ‘言不相聞(언불상문)故爲金鼓(고위금고)’라고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창과 칼이 뒤엉켜 여기저기서 쨍그랑거리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하는데 서로 말하는 것이 들리겠습니까?

 

그래서 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금’과 ‘고’를 만들라고 합니다. 금과 고가 뭐예요? ‘금’은 꽹과리, 징이고 ‘고’는 북입니다. 금과 고 이것이 다 뭐예요? 소리입니다. 오더블(audible)한 시그널입니다. 사전에 서로 약속한 소리신호입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병사들에게 알려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신호입니다. 청각적 즉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음)에는 8음(여덟 가지음)이 있습니다. 옛날에 청각적인 오더블 시그널로 사용할 수 있는 음은 악기에서 나는 소리로 징, 꽹과리 등이 있고 돌로 만든 악기로는 편경이 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 ‘대금’ ‘단소’가 있고 ‘실(현)’로 만든 ‘거문고’ ‘가야금’이 있습니다. 바가지로 만든 악기도 있습니다. ‘생황’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흙을 빚어서 도자기처럼 만들어 후후하고 부는 ‘훈’이라는 악기도 있고 가죽으로 만든 ‘북’ ‘장고’가 있으며 나무로 만든 악기로 국악 연주 할 때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박’이라는 악기가 있습니다.

 

이 악기(소리)들을 자세히 보면 쇠, 돌, 대나무, 실, 바가지, 흙, 가죽, 나무 등 모두가 자연에 있는 소재들로 자연의 소리입니다. 자연 소재들 중 대표적인 것을 뽑아서 만든 것이 동양악기입니다.

 

동양 악기의 특징이 뭐예요? 자연의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대나무에 스쳐가는 가을바람 소리가 대금, 단소 소리로 자연의 소리가 있는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손자는 지금 수없이 많은 병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말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뭘 쓰라고 하냐면 귀로 들을 수 있는 꽹과리, 징, 장고, 북 같은 것을 이용하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손자는 병사들의 이목(의사소통)을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비주얼(visual) 시그널 즉 시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비주얼 시그널, 눈으로 보이는 의사소통을 하라고 하면서 ‘拂相見(시불상견) 故爲旌旗(고위정기)’라고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병사들 간에 눈들이 딱딱 마주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의 눈들을 통일하기 위해 ‘旌旗(정기)’를 만들어 소통 하라고 합니다. 정기라는 것은 깃발입니다. 상대와 뒤엉켜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손자는 병사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귀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꽹과리, 북, 장고 등을 이용하고, 눈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깃발을 이용하라고 합니다.

 

북을 쳐서 공격을 알리고 꽹과리를 빠빠방하고 치면 후퇴하고 깃발을 좌우로 휘두르면 좌우로 움직이고 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뒤엉켜 싸우는 병사들의 눈과 귀가 하나로 모아지게 하기 위해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신호 수단을 이용해 병사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눈과 귀를 통해서 병사들을 하나로 묶어 놓는 이러한 시각적인 방법과 청각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고정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상황에 따라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야전에서 병사들의 눈과 귀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북과 꽹과리 깃발 이런 것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전투를 할 때 깃발 쓰면 됩니까? 밤에는 깃발 쓰면 안 되잖습니까? 왜요? 보이지 않기 때문에 ...

 

그럼 무엇을 써야 해요? 불이라든지 북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둠속에서 보일 수 있는 신호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깜깜한 밤에는 불화살을 써서 명령을 내린다든지 북을 쳐서 신호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밤(어둠)이라고 하는 상황에 최대한 맞는 의사소통 수단을 마련(강구)하라는 것입니다. 낮에 불화살 쏘면 보입니까? 그때는 깃발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말하는 의사소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손자병법 원문입니다. ‘以一人之耳目也(소이일인지이목야)’란 말은 병사들이 듣고 보고 할 수 있는 오더블한 시그널과 비주얼한 시그널이 밤과 낯에 따라 차이가 나는 관계로 상황에 맞게 사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의사소통 수단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전투가 벌어지는 때가 밤인데 깃발이 최고의 소통도구라고 해 아무리 깃발을 흔들어봐야 효과가 있습니까? 반대로 낯 인데 불화살을 쏴 신호를 보내면 병사들이 알아볼 수가 있습니까?

 

손자가 강조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의사소통 수단을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상황에 따라 가족들 간의 의사소통을 바꾸고 있습니까? 옛날에 나랑 같이 살자고 할 때는 초콜릿도 잘 사주더니만, 초콜릿도 어떻게 보면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요즘은 날 아는 체도 안 해요.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의사소통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같이 살자고 조를 때의 소통방법과 지금 소통 방법은 완전히 달라야 소통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처녀 총각 시절 때는 초콜릿이 의사소통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초콜릿이 아니라 금반지입니다. 지금은 낭만적인 그런 것보다 뭐가 더 우선시되는 것입니까?

 

지금은 현실적 믿음이랄까 상대방에 대한 신뢰, 귀한 것(돈)이 소통수단인 것입니다. 의사소통 수단은 결국은 뭐예요? 시간과 상황과 공간(현실)에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해요? 자유자재로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요. 난 10년 전 그대로 해줘요. 처녀 총각 때 설레는 마음으로 연애하던 그 상황에 입각한 소통은 현실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통인 것입니다.

 

손자는 전장에서의 의사소통은 승리의 결정적 힘(요소)이라고 합니다. 전장에서 얼마나 병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하면서, 이목을 집중 시키는 것과 맞물려 낮과 밤에 하는 전투냐에 따라 상황에 맞는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할 때 병사들의 힘은 하나로 모아지고 하나로 모아진 힘은 엄청난 힘을 발휘해 결국은 승리를 한다고 합니다.

 

손자는 의사소통을 강조하며 말을 이어갑니다. 꽹과리, 북, 깃발 등 이런 도구들은 병사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게 하기 위해서 상황, 공간, 처지에 따라서 이목을 하나로 만드는 도구이지 꼭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즉 병사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 상황에 따라서 의사소통 수단은 바뀝니다. 人旣專一則勇者(인기전일칙용자)라고 합니다.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의사소통이 됐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됐습니다. 그 결과는 不得獨進(부득독진) 怯者不得獨退(겁자부득독퇴)된다고 합니다.

 

병사들 귀와 눈과 마음이 하나로 통일됐습니다. 그 때 어떤 놀라운 힘이 발휘 되느냐 하면 ‘용기’ 있는 자는 혼자 잘났다고 진격하지 못하고 겁쟁이는 혼자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용기 있는 사람이 혼자 돌격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조직에서 잘난 놈 하나 튀어 나간다고 해서 그 조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손자는 조직(시스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조직에서 누구 하나 잘 났다고 지 혼자 폼 잡는 것 그것이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뭐예요? 자신의 눈높이를 조직의 수준(분위기)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힘이 처지는 사람은 올리고 높은 사람은 낮추라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 조직은 조직원 모두가 동일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탄탄한 조직이 되는 것입니다. 조직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잘 났고 어떤 사람은 못 났고 이러면 서로 간에 네가 잘났다 못났다 하면서 紛亂이 일어납니다.

 

저 잘난 놈 뭐가 잘났다고, 저 못난 놈 때문에 나까지 피해 본다고, 이런 조직이 되면 어떻게 돼요? 망하는 조직이 됩니다. 군대라고 하는 조직도 마찬가지고 현대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 때문에 피해 본다고 생각하고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이 자기 혼자 잘났다고 폼 잡는다고 질시하고 하면 그 조직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손자는 병사들의 눈과 귀가 하나로 만들어졌을 때 부대는 용감한 자라도 자기 혼자 잘났다고 뛰어나가지 않고 겁쟁이라도 자기 홀로 뒤처지는 일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손자와 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손오열전). 오기라는 장군도 손자처럼 ‘오자병법’을 쓴 당시 유명한 장군입니다.

오기라는 사람! 굉장한 사람입니다. 아주 독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장군이 되기 위해서 부인 목까지 벤 사람입니다. 오기가 장군으로 있는 노나라를 제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나라를 막기 위해 상장군이 돼야 하는데 노나라 군주는 오기의 부인이 제나라 사람이었기에 오기를 장군으로 기용하는데 망설입니다.

 

그러자 오기는 자기 부인을 목을 벱니다. 나는 제나라와 아무 상관없다고, 아주 독한 사람입니다. 의리는 있지만 너무 성질(성정)이 독하다 보니 대신들 눈 밖에 나 초나라로 망명(쫓겨)을 합니다. 초나라에 가서 초나라 왕에게 발탁(쓰임)돼 제상이 됩니다. 그런데 性情(성정)이 어디 가겠습니까? 똑똑하고 의리는 있지만 굉장히 자존심이 세고 아주 독불장군인 성격으로 인해 초나라 귀족들 눈 밖에 납니다.

 

그래서 초나라 귀족들이 저놈(오기) 두고 보자. 너를 중용 한 왕이 죽기만 해 봐라. 우리가 너를 가만 안 놔두겠다고 벼르고 있던 중 초나라 왕이 죽습니다. 그러자 귀족들이 기회다고 하고는 오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자 오기가 도망을 가다 죽은 왕의 시신 뒤에 숨었습니다. 쫒아오면 귀족들이 이제 너를 돌봐줄 사람 없다고 하고는 왕의 시신 뒤에 숨은 오기를 향해 화살을 쏴 됩니다. 결국 오기는 귀족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기만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니라 죽은 왕도 화살 세려를 받아 화살고슴도치가 되었습니다. 죽은 왕의 뒤를 이어 세자가 왕이 되자 전에 오기를 죽인 것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돌아가신 아버님 시신에 활 쏜 놈들 다 나와 라고 하고는 당시 오기에게 화살을 쏜 귀족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결국은 뭐예요? 나 혼자는 절대 안 죽겠다는 것입니다. 너 죽고 나도 죽자. 그런 전법 있잖습니까? 이왕 죽을 거 너도 같이 죽자. 굉장한 사람입니다. 소통이 잘 안된 상황에 대한 부연 각론이었습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쟁을 하는데 병사들이 한 몸 한 뜻이 돼 장군의 뜻대로 움직여 줘야 하는데 용감한 병사가 지 혼자 잘났다고 뛰어 나갑니다. 뛰어나가서는 아주 용맹하게 싸워서 적의 장교 두 명의 목을 베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나 잘했지요? 라고 하니 오기(장군)가 저놈 목을 베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장수들이 아니 왜? 그러십니까? 저렇게 용감한 사람을 왜 목을 베라고 하십니까? 라고 하자 오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병사 하나가 나가서 적장수 둘의 목을 베어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 병사를 그냥 놔두었다가는 병사들 기강이 흐트러지고 결국은 군대(부대) 통솔이 안 된다고 합니다. 누구는 잘났다고(용감하다고) 뛰어나가고 누구는 겁난다고 도망가고 하면 그 부대가 되겠습니까?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을 쳐 버립니다.

 

손자는 말합니다. 此用衆之法也(차용중지법야), 백성들의 귀와 눈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이유는 조직의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는 탄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군대에서 북, 깃발 등을 통해 병사들의 이목과 행동을 집중시키므로 용감한 자도 혼자 앞서 나가지 않고 겁 많은 자도 혼자 물러나지 않게 하는 통솔의 원칙을 강조 합니다

 

필자는 손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드리면서 이런 부연을 합니다.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너무 소통을 복잡하게 하는 것(강요)은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조직에 있어 뭐 이렇게 해선 안 되고, 저렇게 해선 안 되고, 깃발 두 번 흔들면 뒤로 두 번 도망갔다가 꽹과리 한 번 치면 옆으로 한 번 더 치면 다시 제자리로 등 너무 복잡하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주장 이해되시는지요? 어느 집의 아이 엄마가 우리 집은 의사소통이 아주 잘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요? 라고 물으니 이렇게 말 합니다. 아이에게 하루 종일 잘 짜여 진 일과표(간섭)대로 하루를 보내게 한다고 합니다.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학교가고 학교에 가서는 어떻게 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느 학원은 몇 시에 가고 거기서 끝나면 또 어디로 가고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신던 신발은 신발장 어디에 넣고 등 아이의 하루 생활을 일일이 정해놓고 그대로 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간의 의사소통 잘 되는 집입니다.

 

‘의사소통’ 너무 심하게 하면 오히려 소통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됩니다. 소통은 어는 정도 느슨함을 가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너무 타이트한 소통은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의사소통은 아주 간단명료하고, 단순 심플해야지 너무 복잡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안 되고 하면 조직원들이 피곤하고 결국은 조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필자가 하는 말 이해가 되시죠? 의사소통은 아주 간단명료한 의사소통이 의미가 있지 복잡한 의사소통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용하는 노자의 이야기는 의사소통이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소통 안하니 만 못하다는 역설적인 말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색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 12장의 첫 구절로, 다섯 가지 색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은 아주 심플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과거에 라디오만 들어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생생하게 기억 합니다.

 

추운 겨울 저녁을 먹고 나면 하나 둘 마을 사람들이 필자의 집으로 모입니다. 라디오를 들으려고, 밤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설 따라 삼천리’ 듣는 것은 즐겁기도 했지만 무서움에 오줌 지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 지나고는 TV를 보러 동네 어르신들은 물론 아주머니 아이들 할 것 없이 필자 집에 모여서 일종의 가설극장이 매일 밤 개설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동안은 라디오에 매료되다가 라디오를 대신해 흑백 TV를 들어오니 라디오는 저리 가고 모두 흑백 TV 앞에 모여 방송 종료가 되는 밤 12시 까지 시선을 빼앗겼던 시절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칼라 TV가 나오더니만 흑백 TV는 저리 가고 컬러 TV로 바뀌고 요즘은  슬림형 TV, LED TV, FHD, UHD TV 등으로 모든 시선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옛날에는 그냥 흑백 TV 로도 아름답고 내 눈에 좋았는데 요즘 웬만한 색상 갖고는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옛날엔 라디오 소리 하나도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웬만큼 세련되지 않고는 소리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옷 입는 것, 우리 한국 사람들 옷 입는 거 대단히 높은 안목입니다. 오래전(2000년대 초반) 중국에 가끔 가면 중국 여성들 입고 다니는 옷 색상은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쯤 색깔이라는 느낌을 필자는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옷 색상은 엄청 화려한(세련된) 색상입니다. 한때(최근까지도)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옷 색상에 소위 넋을 잃는다고(매료)하고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의 옷 색상이 너무 칙칙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대등해 졌지만...

 

색, 음이 너무 다채로우면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합니다. 이렇듯 의사소통 수단(통제)도 너무 복잡하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합니다. 소통수단이 복잡하면 조직이 견뎌내질 못합니다. 리더가 소통을 한다고, 조직을 강하게 한다고, 법조문(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능사(의사소통)가 아닙니다.

 

손자는 대규모 병사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눈과 귀를 어떻게 하나로 통일 시키느냐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소통은 꼭 군대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들 있잖습니까? 예 있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딱 알 수 있는 사람 있잖습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을 살면서 진정 나와 의사소통이 잘(제대로) 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아는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들 중에 내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생각 안 해 보시는지요?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아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데 진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런 고민 안 해 보십니까?

 

이런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同聲相應 同氣相求(동성상응 동성상구)’, ‘동성상응’은 같은 소리(음)는 서로 공명(응답)한다는 뜻으로, 유사한 성향이나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통한다는 의미이고, ‘동기상구’는 같은 기운(성향,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찾게 된다는 뜻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어울린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부연하면 ‘동성상응’은 소리가 같은 사람, 다시 말하면 색깔이 같고 소리가 같아요. 그런 사람하고 만나면 탁하면 억 하듯, 한동안 TV 개그프로에서 유행했던 개그장면과 같이 서로 간에 찰떡궁합처럼 서로가 융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이란 말 아세요?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하여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말에서 유래한 절친한 사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춘추시대 거문고의 대가 ‘백아’라는 아티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정확히 이해해 주는 ‘종자기’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백아’가 거문고를 얼마나 잘 탔냐면 당대 최고의 거문고 아티스트였습니다. 백아의 친구였던 종자기라는 친구는 백아가 뜯는 거문고 소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백아는 종자기 앞에서 거문고를 뜯고 종자기는 그 소리를 듣는 것에 일상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그런 친구사이였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백아의 연주를 ‘마치 학이 나는 것 같구나, 황하가 흐르는 것 같구나’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종자기의 반응에 백아는 자신이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관중이 없어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거 있잖습니까? 자기 연주를 진정 이해해 주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은 행복한 거 있잖습니까? 그 인정 해 주는 사람이 진정 자기의 뭐였어요? ‘지음’이었던 것입니다. 내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었단 말입니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고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우린 ‘知音(지음)이라 하잖습니까? 여러분들! ‘지음’들 다 있으시죠? 음~ 대답들을 안 하시네요. ㅎ

 

백아에게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진정한 지음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종자기가 죽어버렸습니다. 백아는 종자기로 인해 행복했었는데 왜요? 세상에 수천수만 명 관중이 없어도 종자기 친구만 와서 내 거문고 뜯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이해하고 즐기는 표정만 보면 내가 왜 거문고를 뜯는지 알았었는데 그 친구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젠 어느 누가 와서 자신의 거문고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와 닿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백아는 자기 거문고의 현을 끊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 정말 나를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몇 명이 있으면 됩니까? 한 명이면 됩니다. 한 명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진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한명이면 족합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랍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음이라고 하는 사람, 결국 나와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과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손자가 말하는 눈과 귀가 하나가 되어 서로 소통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음’을 찾는데 있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不挾長(불협장) 不挾貴(불협귀) 不挾兄弟而友(불협형제이우).

 

지음(친구)을 만들기 위해서는 不挾長(불협장) 나이를 따져보고 이것저것 이해타산을 따져 벗을 삼는 것이 아니며, 不挾貴(불협귀) 귀하고 천함을 따져 벗을 삼는 것이 아니며, 不挾兄弟而友(불협형제이우) 형제같이 잘해주는 것을 따져 벗을 삼는 것은 진정한 지음(친구)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 진정으로 자기와 소통이 되는 사람을 찾는데 있어 나이를 결부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 소개를 할 때 몇 년생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주민등록증 까 보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보다 몇 살 위로 나이가 많다고 합니다.

 

뭐 나이 많은 것이 대수입니까? 진정한 소통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데 왜 나이를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따지는 사람 그 사람 평생 ‘지음’을 못 만나다고 필자는 단언 합니다.

 

진정한 지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여러분들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내 나이가 몇 인데 너 나보다 몇 살 많은데, 넌 몇 년생이야, 만나면 제일 먼저 너 몇 년생이야, 주민등록증 볼까? 그래서 어떡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 평생 지음 못 찾습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니까 끝까지 나이에 구속이 돼 진정한 자기 마음 여는 것은 닫고, 나이로 상대로부터 인정(대접(?) 받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한 지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지음을 만남에 있어 또 뭘 끼면 안 돼요. 내가 잘났다고, 이런 사람이라고 하는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군데, 어느 학교 나왔는데, 내가 지금 너하고 ‘지음’하게 생겼어 라는 우월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영원히 지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직위를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내 형이 누군지, 내 동생이 누군지 알아, 자신이 어떤 직위를 갖고 있는 것은 그래도 이해 할 수 있는데 왜 가족, 사돈의 팔촌이 누군데 라고 거론을 해요?

 

어디에 있는 누가 내 형이야, 내 동생이야, 그 사람이 내 사촌 누구누구야! 라고 하면 절대로 지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지음을 얻는다는 것은 나와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으로 나이를 초월해야 하고, 신분을 초월해야 하고, 그 사람의 뒤 배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음’인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맹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 소리를 알아주고, 나와 생각, 정서가 비슷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번 고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송나라 때 ‘소강절’이 쓴 '청야음(淸夜吟)'이란 시가 있습니다.

 

시 내용은 어느 날 새벽에 호수 가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하늘 중심에 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눈을 돌려 밑(호수)으로 보니 바람이 획하고 불어오더니만 물 위를 쓱 스치고 지나가는 상황을 노래 한 것으로 깊은 밤의 고요함과 내면의 자성을 관조(觀照)하는 시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 있습니까? 늦은 밤에 공부를 하다 새벽녘 쯤 밖에 나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에 청초하게 떠 있는 달과 주변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느껴 본 경험 있으세요? 필자는 있습니다.

 

하늘에 달이 하늘마음 가에 이르고 바람이 물 위를 스쳐가는 것이 하찮은(일상적) 아주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런 것이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청초한 의미 있는 것들입니까? 그것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부자라도 얻을(가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내 마음을 아는 그 상황을 아는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뭐 특별한 것만이 대단한 것인 줄 알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특별한 것만이 다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진정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하다못해 저녁에 달빛과 바람이 스치는, 일상적으로 비쳐지는 달과 밤바람을 맞으면서 깨끗하고 맑은 소소한 즐거움을 이해해 줄 사람, 내가 출세해서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가족들과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것보다,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콩나물국 맛있게 끓여서 가족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편적(일반적)이지만, 그런 일상적인 것들이 갖는 행복감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것을 알아줄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손자병법 군쟁편 “의사소통이 힘이다”를 각론 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병사 간의 의사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 인생(삶)에서도 진정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에 대한 물음(성찰)을 피력해 봤습니다.

 

개인의 삶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의사소통이 막혀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태권도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경영자와 노동자들이 서로 갈등하고, 태권도계 조직 핵심임원들이 자신의 개인 영달과 측근들의 먹고 노는 놀이터로 태권도계 조직을 사유화 하고 태권도 정신을 외면한 채 영혼 없는 좀비로 태권도계에 군림하므로 태권도계는 일선 태권도인들과 괴리되고 나라는 국민과 정치가가 서로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불신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요? 바로 소통 부재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구성원 간에 소통이 안 되는 것에서 온 상황입니다. 서로 만나서 마음을 열고, 내 지위를 잊어버리고, 나이를 잊어버리고, 내 배경을 잊어버리고 소통을 하면 충분히 서로가 상생하는 풍요로운 삶(사회)이 될 수 있는데 서로 내 나이가 어쩌니, 지위가 뭐니 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국가, 기업, 태권도 조직, 가정 등 사회전반이 진정으로 서로가 상생하는 사회(조직)가 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의사소통이 힘이다”에 대한 각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36강에서는 “현장 상황을 주목하라”에 대해서 각론 합니다. 감사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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