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實篇(허실편) 29강 “숨겨야 강해진다(grow strong)”

신성환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지금 우리는 손자병법 虛實篇(허실편)을 토파(공부)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 총 13편 중 여섯 편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섯 편의 제목이 뭐예요? 虛實篇입니다. 虛(허)! 상대방의 허점이 뭔지 또 나의 허점이 뭔지? 이 허실을 밝혀야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자녀를 키울 때 내 자녀가 虛하게 크면 좋겠어요? 實하게 크면 좋겠습니까? 실하게 키우는(성장)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잖습니까? 그러니까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허실편의 중점 내용은 나라고 하는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강해지려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내 조직이 강해지는 즉 실하게 하는 방법을 ‘허실편’에서 말(강조)하고 있습니다.

 

허실편에서 강조하는 내가 상대방보다 강해지려(실해지는)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여러분들! 내가 상대방보다 ‘실’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상대방보다 실해지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 하세요?.

 

손자는 허실편에서 어떤 방법을 말 하냐면 내 생각과 내 의도를 상대방이 전혀 모르게 하라고 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상대방이 모르면 아무래도 상대방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해요?

 

수비(방어)를 하려고 할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나의 힘이 커진다고 합니다. 왜요?  사람들은 거 있잖습니까?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공포감을 같습니다(느껴요). 밤늦게 산에 가보셨지요? 낮에 갈 때는 산이 그렇게 좋다가 깜깜한 밤 한 열두 시쯤 돼서 산에 가면은요 엄청난 공포감(무서움)이 엄습해오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공포를 느낍니다.

 

왜! 무서운 거예요? 모르니까요 도대체 저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무서운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방이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를 때 사람은 제일 두려움(공포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는 나를 숨겨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형체가 없음 즉 무형을 말합니다. 無形. 나의 형체(모양)를 적(상대)에게 안 보여야 한다고 합니다. 대신 상대방의 형체는 어떻게 해야 돼요?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많이 알고 나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상대의 의도는 환하게 꿰뚫고 나의 의도는 전혀 상대방이 모르게 하라고 손자는 강조를 합니다.

 

그래서 손자병법 허실편에 첫 번째로 손자는 유명한 명제 중에 명제 하나를 제시 합니다. 상대방의 모습은 환하게 꿰뚫어보고 나의 모습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혀 모르게 하라. 이것이 허실편에서 강조하는 내가 상대보다 강해지기 위한 첫 번째 방법입니다.

 

‘故形人而我無形(고형인이아무형)’ 상대방은 형체(모습)가 드러나게 하고 나는 절대로 형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 형체가 들어나지 않게 하려면, 내 의도를 상대방이 모르게 하려면 제일 좋은 것(방법)이 뭐예요?

 

내 의도를 상대방이 못 알아채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침묵이 최고란 말입니다.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요 괜히 무섭습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요 상대방은 별의별 생각을 다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화가 났을까?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등등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정말 坐不安席(좌불안석)이 됩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경험해보지 못한 무기(병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 무기가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 건지, 저 무기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등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걱정을 안 해도 될 무기지만 그 무기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는 정말 두려움(공포)의 대상인 것입니다.

 

섣불리 공격도 못하고 노심초사 그 무기의 성능을 아는데 모든 것을 집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형체를 무형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를 하고 그 방법은 침묵이 최고라고 합니다.

 

‘노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多言數窮(다언삭궁)’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困難)한 처지(處地)에 빠진다는 말로 상대방에게 말을 너무 많이 하면 궁지에 몰릴 수 있습니다. 왜요? 내가 한 말이 있으니까 그 말 때문에 상대방한테 발목이 잡혀서 궁지에 내 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노자’에서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안 하고 침묵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의도가 뭔지 모르게 만들어요. 그랬을 때 나에게 이로운 점이 뭐냐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말을 조심하고 상대방에게 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 우리 조직은 힘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의 힘은 한곳에 집중되고 적은 나를 모르니까 힘이 분산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형체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득이 되는 결과가 이것입니다.

 

나의 힘은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고, 한 군데로 힘을 모을 수가 있으나 상대방은 내 의도를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여기도 막고 저기도 막아야 되니까 어떻게 돼요 힘이 분산되는 것입니다.

 

나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 힘은 분산되는 것입니다. 나를 모를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요 故形人而我無形(고형인이아무형)의 결과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형체를 상대방에게 절대로 드러내 보이지 말라고.

 

이 말은 손자병법에서 여러 곳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손자병법 ‘始計算(시계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도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말라! ‘손빈’이 ‘방언’을 제거 할 때 사용한 방법이잖습니까?

 

‘시지불능’ 내가 능력 있고 잘났어도 상대방한테는 어떻게 보이라고요? 뭐 별로 능력이 없는 것처럼 바보처럼 보이라는 것이잖습니까? 이 시지불능은 반대로 말하면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을 남에게 바보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자성어 중에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있습니다. 각론 하는 내용과 맥을 같이하는 말로 내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 내 의도를 말하지 말라, 상대방이 날 모르게 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난득호도’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말로 멍청이 바보 뭐 이런 뜻으로 멍청이나 바보가 되기는 참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청나라 때 정판교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래이름은 ‘정석’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판교는 청나라 때 아주 유명한 괴짜 화가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 똑똑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또 바보로 사는 것도 참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똑똑한 사람이 바보처럼 가장하고 사는 것이 더 어렵다. ‘난득호도’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데,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내 자식이 얼마나 잘났는데, 내 남편이 얼마나 멋진데, 그거 자랑 안 하고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가장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난득호도’라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북경 시내에 옛날 물건인 골동품을 거래하는 유리창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입니다. 외국인들을 위한 중국 골동품 거리(시장)입니다.

 

그곳에는 물건 값이 비쌉니다. 우리나라에도 저렴하고 오리지널(?) 진짜 오래된 골동품을 사려면 어디로 가요? 청계천 황학동 시장으로 가잖습니까? 중국에도 진짜 오래되고 싼 골동품을 사려면 ‘유리창’이 아니라 ‘판지아위엔’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판지아위엔은 중국 천안문에서 남쪽으로 한 3km 와서 동쪽으로 2km 정도 가면 있는데 이곳에 ‘반가원’이라고 하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골동품을 파는 일요시장(정크시장) 있습니다.

 

필자가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 북경에 갈 때마다 판지아위엔을 자주 갑니다. 옛날의 유명한 서화(글씨)는 물론 기괴한 물건들부터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오래된 물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많은 물건 중에 우리나라처럼 중국인들이 집에 가장 많이 걸어놓는(선호하는) 족자가 있는데 그 족자에 쓰인 내용이 뭔지 아세요? 우리 우리나라는 뭐예요? 우리나라는 ‘가화만사성’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정, 영업장(가계)등에  많이 걸어 놓은 족자에 쓰여 진 글자는 ‘가화만사성’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어놓는 족자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글자가 쓰인 족자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난득호도!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척하면서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똑똑한 것을 남들이 잘 인정을 안 해줍니다. 좀 바보 같다고 생각해야지 인정을 해 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 필자가 始計算 11강 “상인은 훌륭한 물건을 감춘다”에서 각론 할 때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 사람들 심성은 절대로 자기의 밝은 광채를 바깥으로 안내보인다고, 그러니까 옷 입은 모습을 갖고는 도대체 저 사람이 어느 정도 레벨인지 판단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요? 자신의 능력 등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사니까 알 수가(판단할 수)없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필자의 지인이 중국에서 직접 경험한 일화입니다.

 

중국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중국어를 빨리 습득하고자 북경 시내에 아파트를 하나 얻어 생활하려고 아파트를 하나 월세를 내서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은 외국인들이 지정한 거주지에서 생활해야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살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물고 바로 추방을 시켜버립니다. 외국인 거주와 관련하여 법(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는 지인은 그래도 중국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면 중국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고 중국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어렵게(불법으로) 집(아파트)을 하나 월세로 얻어 생활하려고 섭외를 해 계약을 하러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완전히 런닝 차림에 아주 허름한 모습으로 자신이 집 주인이라고 하며 계약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약 조건을 확인하고 계약을 하기는 했는데 불법적인 것이라 걱정이 되어서 혹시라도 적발이 되면 어떻게 하냐고 주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외국인이라 지정된 곳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다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집주인이 그런 걱정 조금도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무슨 힘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할까라고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문 앞에서 누가 막 문을 두들기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내가 여기 이사 온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찾지 라고 하며 살짝 보니까  중국 경찰(공안)들 대여섯 명이 문을 두들기는 것 이였습니다. 아 이거 큰일이 났다. 내가 불법으로 임대해서 산다는 것이 적발되었구나, 어떻게 하지하며 질린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근데 들어오는 사람들 모습이 험악해 보이질 않아요. 웃으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가고 하고는 자세히 공안(경찰)들을 살펴보니 그중에 자신에게 세를 준 집주인이 있더란 것입니다.

 

나한테 집을 세준 아파트 주인이 공안이었던 것입니다. 야! 그 사람이 불법으로 세 놓고 사는 집주인인데 한편으로는 거주지를 벗어난 외국인들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세를 놓고 사는 것입니다.

 

야! 중국이 이런 곳이구나. 지인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계약할 때 입고 있었던 옷 등 당시 모습으로 봐서는 거주지를 벗어난 외국인을 단속(잡으러)하는 공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동네에서 월세를 놓고 사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난득호도’  중국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절대로 겉모습을 보고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경제능력, 하는 일(직업) 등 그 사람의 삶과 관련하여 파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이 어떤지 도대체 저 사람의 속에 어떤 광채를 갖고 있는지 겉모습만으로는 판단이 안 되는 것이 중국인의 마인드인 것입니다.

 

손자병법에 상대방은 드러나게 하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 해요. 감춰라. 이것은 엄청난 고도의 전략(인식)인 것입니다. 웬만하면 다 보여주고 싶거든요. 웬만하면 자랑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나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중국인 특유의 정신 인 것입니다.

 

사실 똑똑한 사람보다는 약간 좀 뭐랄까요 조금은 어리 숙한 사람에게 더 정이 가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사람이 너무 찰찰(똑똑하면)거리면 정이 안갑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인간형으로 똑똑하고, 성실한 유형을 들 수 있습니다.

 

똑똑하고 아침에 일찍 출근해요, 남들은 8시에 출근을 하는데 남들보다 일찍 6시에 출근하고 퇴근은 밤 11시에 합니다. 아주 똑똑하고 성실한 유형입니다.

 

두 번째 인간형은 똑똑하긴 한데 게을러요. 하지만 능력은 있어요. 남들이 아홉시까지 출근하면 아홉 시 십 분쯤 와요. 이런 인간형이 있잖습니까? 그 다음으로 세 번째 인간형은 무능해요. 무능하지만 엄청나게 성실해요.

 

능력은 없는데 새벽같이 출근하고 자기 혼자 일 다 하는 것처럼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밤늦게까지 퇴근도 안 해요. 네 번째 형은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유형입니까?

 

이 네 가지 유형 중에 진짜 지도자는 어떤 유형이 지도자가 돼야 해요? 음 ~ 똑똑하고 유능한 인간형, 절대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그런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조직은 망합니다. 지도자가 똑똑하고 부지런까지 하면 그 조직은 견뎌내질 못합니다.

 

진짜 지도자는 이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능력은 있는데 좀 게으른 사람, 왜요? 그래야 눈치 봐서 사우나도 갔다 오고, 좀 일찍 조퇴(퇴근)도 하고 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능력까지 있는데 새벽부터 와서 구성원들이 몇 시에 출근했는지 이거 체크한다고 해 보세요.

 

어유! 그런 상사 밑에서는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요. 조직원이 견뎌내질 못합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참모를 해야 합니다. 참모 형입니다. 진짜 리더 형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약간 뭐한 사람이어야 해요.

 

앞에서 뭐라 했어요? 형체가 어떠해야 한다고 했어요. 잘 안 보이는 사람, 우리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사람이라고 하잖습니까? 깐깐한 사람을 일컫는 것 아닙니까? 그 있잖습니까? 뭐랄까 이렇게 찌르면 들어갈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가끔 요령도 피우고 농땡이도 치지 않겠습니까? 너무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땡땡이는 고사하고 요령도 피우지 못하잖습니까? 옛말(속담)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수 없다고, ‘수지청무어’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다.

 

수지청이면 뭐가 없어요. 물고기가 없어요. 사람이 지극히 찰찰거리면, 찰이란 것이 뭐예요? 살핀다는 것입니다. 찰찰거리면 사람이 너무 살피고 살피면, 살핀다는 것은 따진다는 것입니다.

 

뭐가 없어요. 따르는 친구들이 없습니다. 수지청이면 무어입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찰찰거리면 주변에 친구가 없습니다. 진짜 리더는요 약간은 좀 빈 곳이 있어야 합니다.

 

좀 비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거 있잖습니까? 좀 부족하지만 인간미 있는 언뜻 보기에 2% 부족한 듯 좀 어리벙벙한 그러나 어떤 일을 추진 할 때는 그 일과 관련하여 풍부한 지식으로

 

위기적 상황이 벌어지면 임기응변적으로 신속하게 대처를 하고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며, 조직원을 인격으로 대하고, 과감하고 자신 있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하고, 잘못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내치는 그런 성격을 가졌지만 조금은 부족 한 듯 보이는 사람이 리더 자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사이어야 조직원이 옆에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성실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100% 완벽한 사람 밑에서는 버텨낼 수 없는 것입니다. 성실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지만 2% 부족한 사람이 진정한 리더인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부하 직원을 대하는 것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거시기’ 하는 것이라고 표현 하고 싶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 ‘부시’와 ‘엘고어’를 대비해 좀 더 부연하겠습니다. 부시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상대가 ‘엘고어’였습니다.

 

부시와 엘고어는 앞에서 각론 한 유형 중에 성격에 있어서 전혀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이라고 필자는 생각 합니다. 엘고어의 스타일은 아주 똑똑하고 성실한 스타일입니다. 반면 부시는 뭐 무능하고 게으르고 뭔가 나사가 빠진 듯한 2% 부족한 스타일입니다.

 

말도 덤벙덤벙하고 실수도 잦고 뭐랄까 리더로서 좀 부족한 즉 샤프하지 못한 타입으로 말실수도 많고 알코올 중독자 등 지도자(리더)로서 좀 모자라는 똑똑하고 성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반면 엘고어는 똑똑하고 어디하나 모자람이 없는 아주 샤프한 스타일이었지만 부시가 엘고어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었잖습니까?

 

완벽한 사람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은 약간 자기 형체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그러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조직에 리더로 있을 때 그 밑에서 있는 구성원이 편하게 일 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난득호도’처럼 자기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손자가 ‘허실론’에서 주장하는 나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내 형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상대방의 힘은 분산되는 것입니다.

 

왜요? 상대방이 내 형체를 모르니까 여기저기 다 지켜야(방어)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은 분산되고 나는 한 군데에 집중해서 공격을 하니 강해지(실)는 것이고 상대방은 분산돼서 열로 나눠지니 약해(허)지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과 싸우면 어떻게 되요? 내가 이기는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나는 집중되고 상대방은 열로 분산이 됐죠! 그럼 나는 힘을 어디로 모아요. 한곳 즉 하나로 된 분산된 힘이 아니라 하나로 집중된 강한 힘이 되는 것이고 상대방은 열로 분산되고 약해진 상태에서 집중된 하나의 힘으로 치면 10대 1이 되니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손자가 말하는(주장) 것은 결국은 나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았을 때 상대방은 내 의도를 모르니까 여기저기 분산될 수밖에 없다. 그랬을 때 나는 하나의 힘으로 합쳐진 강력한 힘으로 분산된 상대방을 콱 때렸을 때 열로 하나를 때리는 효과를 낸다고 하면서 ‘무’형의 논리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원래는 상대방하고 나하고 둘이 만났을 때는 똑같았습니다. 저 사람도 열이고 나도 열이었습니다. 힘이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떻게 된 것이에요? 나는 열이 됐고 상대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거예요? 상대방은 의도를 읽혔고 나는 안 읽혔기 때문에 나의 숫자는 많아지고 그 많아진 수를 하나로 집중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적어지고 적어졌기 때문에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손자가 말하는(주장하는) ‘허실론’입니다. 허실론 아! 이거 잘 이해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누군가와 싸울 때 내 의도를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침묵하고 뭔가 모르는 공포감을 상대방에게 줘서 상대방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그때 내 힘을 콱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거 아주 겁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말입니다. 손자는 계속 논리를 끌고 가다가 이런 문장으로 논리를 마감합니다. ‘吾所與戰之地(오소여전지지)不可知(부가지)’란 유명한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해석하면 ‘내가 더불어서(함께) 전쟁하려고 하는 땅(장소)을 상대방에게 절대로 알려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상대방하고 싸우려고 하는 장소에 대해서 절대로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상대에게 내가 이쪽을 공격할 것이라고 들어내면(알리면) 당연히 상대방은 그곳을 방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곳을 막고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어디를 공격할지 상대방이 전혀 모르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손자가 주장하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상대방이 나의 공격 의도 즉 내가 어디를 공격할 것인지를 모르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뭐라고 해요? 침묵하라고 합니다. 즉 말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정나라의 무공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나라 무공이 옆에 있는 ‘호나라’를 취하고 싶었습니다. 즉 침략해 정벌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벌을 하고 싶은데 앞에서 각론 했듯이 상대방이 내 의도를 모르게 하고 조정의 뜻을 모아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호나라’를 치겠다는 의도는 숨기고 준비를 해야 뜻을 이루는 상황이잖습니까?

 

내 형체를 어떡하라고 했어요. 숨기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적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다른 기만전술(전략)도 있지 않습니까? 무공은 방법으로 자기 사랑하는 딸을 ‘호나라’로 시집을 보냅니다.

 

호나라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사돈 나라 아닙니까? 사돈 나라가 설마 쳐들어오리라고는 생각 안 할 거 아니겠습니까? 정나라 무공!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기 딸을 호나라를 치려고 시집을 보내놓고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정회의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주변 국 중에 어떤 나라부터  치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어봅니다. 그때 조정 대신 중에 ‘관기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관기사가 무공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무공의 마음(생각)이 무엇인지, 왜 조정회의를 하는지 안 것입니다.

 

딱 보니까 정나라 무공의 마음이 호나라에 욕심이 있다는 것을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관기사가 얼른 호나라 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진언을 합니다. 그리고는 칭찬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나라 무공은 아이쿠! 이놈(관기사)이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예요? 자신의 의중이 노출된 것이잖습니까.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들킨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저놈이 내 사돈 나라를 나더러 치라고 한다고 역정을 내고는 참수를 시켜버립니다.

 

왜요? 상대(호나라)에게 더욱더 믿게 만든 것입니다. 자기의 의도를 철저하게 숨기고 호나라를 멸망시키고 통합을 합니다. 관기사 이 사람 왜 그런 말을 해요. 정나라 무공이 무슨 의도(뜻)을 갖고 있는지 알았으면 가만히 있지,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들! 자신이 어떤 일과 관련해서 잘 안다고 해도 그 아는 사항, 즉 생각을 표출 할 때와 안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말해서 칭찬(좋을 때)받을 일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이 말한 것 때문에 자기 발목이 잡힙니다.

 

자신의 의도를 읽히면요 어이쿠 저 놈이 내 의중을 빤히 알고 있는 놈이구나 하며 경계를 합니다. 결국은 자기가 말한 것 때문에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긴단 말입니다.

 

정나라 무공 이야기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큽니다. 공자(논어)는 말은 좀 어눌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눌언(눌변)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눌언(변)이 뭐예요? 더듬거리며 서툴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사안)에 대해서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듬거리며 서툴게 뭔가 2% 부족하게 말하는 것을 눌언(눌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을 함에 있어 달변이 있고 눌변이 있습니다. 눌변이라 함은 어눌한 것입니다. 말을 하는데  제대로 못하는 경우 있잖습니까?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뜻(의미)이 명확하게 상대가 빨리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것이 눌변입니다.

 

공자(논어)는 말은 좀 더듬거리고 굼뜨게 하더라도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고 합니다. 訥言敏行(눌언미행)이라 함은 말은 느려도 실제 행동은 재빠르고 능란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손자가 계속 주장하는 것은 내 형태를 감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 형태를 감춰야 어떻게 된대요? 내 힘이 상대방보다 더욱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집중될 수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내 의도를 모르니까 분산되고 그랬을 때 내 힘은 상대방보다 열 배로 커진다고 주장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묵하고 내 의도를 보이지 않아야한다고 ‘허실론’에서 계속 주장합니다. 필자는 내 형체를 보이지 말라는 것을 각론하면서 이런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韜晦之術(도회지술)! 도해지술 이란 말은 잘(자주) 쓰이는 말이 아닙니다. 도회지술이라 함은 韜(감출도), 晦(그믐 회), 之(어조사 지), 術(재주 술)로 자기 본래의 면모를 숨기기 때문에 자기를 보전하기가 쉽다는 말입니다.

 

즉 도회지술 적 행동을 하면 어떤 대척(상대방과)이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회지술을 글자가 갖는 의미로 토파하면 韜(감출도)는 칼집에 칼을 집어넣어 감춘다는 의미이고, 晦(회)라고 하는 것은 그믐 회자로 그믐이란 캄캄한 어둠으로 하늘에 달이 가장 작게 보일 때로 보름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감춘다는 의미로 달빛이 가장 안 보이는 상황으로 무형의 형체를 말합니다.

 

도회지술을 좀 더 부연하면 자신이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이 선 칼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칼집에 집어넣어 감추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칼이 있다는 걸 보여주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밝게 빛나는 달빛이 빛을 최대한 감출 때 더욱 빛난다는 것으로 인생을 살면서 내 날카로운 칼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칼집에 집어넣고 나의 빛나는 광채를 감추고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회지술’이나 앞에서 각론 한 ‘난득호도’ 이 말들은 내 형체(모습)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회지술의 晦(회)자는 허물없이 쓰기 위해 짓는 이름인 號(호)에 많이 씁니다. 晦(회)라고 하는 것을 자기의 빛을 감춘다는 의미와 연관시켜 號에 많이들 씁니다.

 

은나라 때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은나라 마지막 군주(폭군)는 주왕입니다. 주왕은 “酒池肉林(주지육림)”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한 폭군(왕)입니다. 주왕이 酒池肉林에 빠져 시간(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기자에게 전령을 보내서 도대체 지금 날짜가 어느 정도 됐냐고 물어봤습니다.

 

기자가 보기에는 폭군(주왕)이 주지육림에 빠져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아주 통탄할 노릇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왕이 묻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자기(기자)는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 알고 있지만 전령한테 나도 술 먹고 취해서 노느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참고로 箕子(기자)는 고조선 때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기자 조선의 시조(始祖)를 말합니다.

 

그래서 전령이 폭군 주왕에게 가서 기자 선생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폭군 주왕이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모르자고 하며 주지육림에 더 빠집니다. 만약에 기자가 지금은 몇 월 며칠이고, 무슨 날짜이고, 제사 지낼 때가 됐고, 등등 돌아가는 상황을 말했다면 폭군 주왕이 그래 난 주지육림에 빠져서 모르겠는데 넌 왜 안 취했어 라고 해 그대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을 같이 먹다가 상대방은 취했는데 나만 깨어 있다가 친구 간에 의리상하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세상(상대)이 취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참 좋다. 그 말 잘 했다. 세상이 취하면 같이 취하고, 세상 물이 더러워도 같이 담그고 있다가 내 발 깨끗이 씻으면 되는 것입니다.

 

즉 묻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너무 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옭고 그름은 확실히 해야 함은 당연하고요.

 

‘도회지술’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내 빛나는 광채, 나의 잘남을 세상이 받아줄(인정) 때는 빛을 발해야합니다. 세상이 원칙이 통용되고 질서가 잡힌 때(상황)라면 나의 빛나는 광채를 충분히 세상에 펼쳐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는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해요? 감출 필요가 있습니다. 왜? 감춰요. 그것을 꺼내놓으면 왕따 당하니까요. 알아주지 않고 배척을 해 버리니까요.

 

나를 감춰야 하는 이유(상황)를 필자는 손자병법을 통해서 각론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필자의 경우 나름 태권도계에 방귀깨나 뀐다고 자화자찬 합니다. 이론, 실기, 무도정신, 생활철학, 평판 등 태권도인으로서 나름 빛나는 광채를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허나 태권도계는 태권도 태동기 이후 지금까지 조직 언저리에서 갖은 모사와 무도정신이 결여된 행동으로 성장해온 기득권 적폐들이 서로간의 카르텔을 형성해 서로 밀어주고 끌고 해 자신들의 먹고사는 놀이터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태권도 발전을 저해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을 바꾸고자(개혁) 목소리(지적)를 내지만 목소리를 죽이고 그냥 묻어가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도회지술을 각론하면서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 보면 어떤 상황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주장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각론을 듣는 여러분들 각자가 판단해 보길 바랍니다.

 

필자가 평소 주장(갖고있는)하는 군자론(대장부)을 피력 해봅니다. 하늘의 뜻이 있으면 태권도의 대통령(원장)이 돼서 필자가 추구하는 무도로서의 태권도 전반에 대한 비전을 펼쳐 진정한 무도태권도로 세계에 우뚝 서게 하는 꿈을 갖고 생활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 없다면 맹자의 주장처럼 내게 주어진 태권도를 향한 필자의 道(갈길)를 펼치며 즐기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위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富(권력)에도 나의 뜻을 옮기지(잃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음란함에도 나의 뜻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필자 나름의 군자 철학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도회지술’이라는 것이 어떤 상황, 즉 일을 접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인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거시기’한 처세와 관련한 방법론일 수도 있습니다.

 

잠시 본 각론에서 벗어난 각론을 했습니다. 본래 각론으로 돌아와 각론 하겠습니다. 손자는 내(자신이)가 갖고 있는 형체를 상대방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허실편’에서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대에게 나의 형체를 감추었을 때 나의 힘이 상대보다 열배 강해진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결국 나의 힘은 어느 때 강해진다는 것입니까? 감췄을 때 상대방이 나의 빛을 보지 못하게 했을 때 그때 내 힘은 강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눈치 못 채고 나의 빛남에 대해서 간파하지 못했을 때 내 힘은 늘어나(강해진다)는 것입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덕(智德)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부연하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도자가 자기가 번쩍번쩍 빛나는 광채를 어떻게 해야 돼요? 좀 낮추란 말입니다. 낮춰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백성과 함께 하라는 말입니다. 티끌진 자와 이 풍진 세상과 눈높이를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예요? 맞추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노자’가 지도자한테 하는 말인 즉 지도자시여 당신이 갖고 있는 그 똑똑하고 능력 있는 거 좋습니다. 빛나는 지혜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좀 낮추세요. 당신의 그 높은 눈높이를 우리 백성들 눈에 좀 맞춰주세요. 우리 백성들의 눈높이는 이거밖에 안 되는데 지도자는 이만큼을 바라고 있으니 백성들이 너무 힘이 들어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뭐 하기 힘들어요. 당신이(지도자)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혜는 정말 굉장한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 빛나는 지혜를 조금 낮춰서 백성과 함께 하므로 민중(백성)들의 눈높이와 내(지도자) 눈높이를 같이 하는 그런 삶의 자세가 바로 ‘화광동진’의 삶(세계)입니다.

 

손자는 나의 의도를 감춰라, 상대방이 모르게 해라, 그랬을 때 내 힘은 커진다고 말(주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 형(모습)이 무형이 되며 결과는 상대와 같은 힘일 때 내 힘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형일 때, 내 형체를 바깥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 나의 힘은 어떻게 돼요? 집중이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어떻게 돼요. 나의 의중을 모르니 분산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집중됐을 때 내 힘은 배가 되고 상대방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계속 강조하는 나의 형체(모습)을 들어내지(감추는) 않는 것입니다. ‘무형’이라고 하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형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무능 한 것은 별 관계(상관)가 없어요. 쥐뿔도 없는데 그것은 그냥 드러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데 즉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빛난 광채가 있습니다. 그런 나의 능력과 광채를 상대방이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과 광채를 자랑하고 다니지 말란 것입니다.

 

상대방의 힘이 분산됐을 때 나의 힘은 모아지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의 힘이지만 나는 열이 되고 상대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힘은 모아지고 상대방의 힘은 흩어져 나는 ‘실’해지고 적은 ‘허’해지므로 나는 승리하고 적은 패배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손자병법에서 강조하는 내가 갖고 있는 형체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는 무형의 말(주장)은 병법으로서 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라고도 생각합니다.

 

‘도회지술’ ‘난득호도’의 의미가 인생(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갖고 있는 광채, 자랑하고 싶은 것(능력)을 내 보이지 않고 생활 할 때 진정한 나의 빛(광체)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상대방은 드러나게 하고 나의 모습은 감추라는 말처럼 우리가 인생(삶)을 사는데 있어서 나를 낮추는 지혜는 꼭 가슴속에 새겨야 할 지혜(방법)입니다.

 

‘숨겨야 강해진다(grow strong)’ 각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30강에서는 “분석하라”에 대해서 각론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http://www.ctu.ne.kr - 태권도지도자교육

http://www.taekwondoforum.net - 태권도포럼

http://www.moodotaekwondo.com - 무도태권도

金烏 신성환 - 이력보기 ☜ 클릭하세요